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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Feb 10. 2019

#14  사고 다발 구간, 안전거리를 유지하세요.

낮은 목소리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나도 모르게 온 몸에 강한 힘이 들어가 경직된 상태였다.

  여기가 영국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안될 만큼 오래지 않아 우리는 익숙한 생활 패턴으로 돌아왔다. 한 지붕 아래 있더라도 같이 일하는 시간 외에는 남남처럼 각자 방에 들어가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인터넷을 못하던 브루더호프를 떠나 와이파이존으로 복귀한 이래 수빈이는 방에 처박혀 온종일 태블릿으로 영상을 봤다. 모그룹의 노래 A부터 Z까지 흥얼거리다 못해 가끔은 혼자 방에서 춤까지 추는지 요란스러운 소리가 문틈 사이로 세어 나왔다. 아빠는 늦은 새벽까지 혼자 다락방에 올라가 책 읽던 습관대로 브리짓네 있는 책이란 책은 마구잡이로 쌓아둔 채 그 속에 파묻혀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무도 모르게 방을 순회하며 끌어 모은 빨래를 돌리고 끊임없이 주변 정리정돈을 했다.  

  엄마가 내 방문을 빼꼼히 열었다.


  “내 빨래는 내가 알아서 해. 건들지 마.”


  벽에 기대어 글을 쓰던 나는 엄마의 의중을 살피지도 않고 무작정 인상을 찌푸렸다.

  반사적으로 엄마를 불청객으로 간주해버린 이유는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이면에는 온종일 가족과 있다는 갑갑함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볼 일 없으면 나가줘."


  방 안에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어정쩡해하던 엄마는 결국 문을 닫고 나갔다.     

  여행은 내 마음이 어떻든 개의치 않고 계획대로 나아가야 했고, 염려했던 대로 암묵적으로 그어놓은 각자의 안전지대는 시간이 더할수록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나는 점점 더 가족들의 사소한 행동, 말투, 표정에 예민해지고 있었다.








  엄마는 평소 우리 외에 다른 사람들과 말을 잘 섞지 않았다. 이럴 거면 뭐하러 여행을 왔는지 의아하리만큼 나를 답답하게 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엄마 혼자 호스트와 대화를 시도할 때가 있다면 딱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청소도구와 세탁기가 어디에 있는지 청결에 관련한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빈이로부터 비롯된 부탁들이었다.  


  “익스큐즈미, 어디서 물을 먹으면 돼요?”


  어느 날, 엄마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거실 탁자에 앉아있던 소피에게 말을 걸었다.

  가족들의 대기조로 의사소통을 도맡았던 나는 드디어 엄마가 변하는구나 싶어 흐뭇하게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 비록 둘이서 손짓으로 대화할지언정 나는 중간에 나서서 통역을 돕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엄마는 호기롭게 물이 가득 담긴 컵을 들고 자신은 마시지도 않은 채 어디론가 향했다. 별안간 내 마음은 냉랭해졌다.

  수빈이 방으로 들어간 물컵은 빈 컵이 되어 돌아왔다. 보나 마나 침대에 누워 태블릿을 하던 수빈이는 엄마가 건넨 물 잔을 당연하게 받아 들고 한두 모금 들이켰을 것이다.


  “박수빈은 혼자 물도 못 떠 마셔?”


  나는 누군가 똑똑히 들으라는 의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수빈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엄마의 습관은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변함이 없었다. 내 눈에 수빈이는 엄마에게 의존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에 맞게 두 모녀는 자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수빈이가 합법적으로 많은 권한을 부여받는 스무 살을 앞두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냥 내가 떠다 준거야~~~”


  엄마는 재빨리 수빈이를 변호했다.


  “박수빈이 영어를 못해? 몸이 아파? 왜 엄마가 해줘?”


  “수빈이가 부탁하는 게 어렵다길래 해준 거야.”


  “엄마가 그렇게 다 해주니까 쟤가 저러지.”


  “내가 뭘!”


  그제야 수빈이는 제 의지로 말문을 떼었다.

  억울해하는 목소리였지만 얼굴은 아까부터 보고 있던 모 아이돌 영상에서 떼질 못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한다한들 수빈이는 귓전으로 들을 게 뻔했다.


  “됐다 됐어.”


  나는 말을 더 섞고 싶지 않다는 싸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갔다. 엄마나 수빈이나 똑같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서도 엄마가 상을 차리면 국이 짜네, 소스를 빼 달라는 등 사족이 많았던 아빠였다.

  아빠의 신토불이 한국 입맛과 서양식이 맞지 않을지라도, 그런 아빠를 특별히 신경 써서 식사를 준비해주는 브리짓을 생각한다면 그 누가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을까.


  “에이 진짜! 이 향신료 도대체 뭐지? 이것 때문에 못 먹겠네.”


  아빠는 다 같이 밥 먹는 자리에서 들었던 숟가락을 휙 내려놓았다. 한국말로 했지만 온갖 인상을 다 쓴 표정을 보고 모두가 내용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싸늘한 목소리로 한 방을 날렸다. 참고 참다가 터져 나온 말이었다. 


  “뭘?”


  아빠는 당황했다.


  “그런 평가하는 듯한 말 하지 말라고.”


   여전히 내 목소리는 저음이었고,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젓가락질을 똑바로 해라, 밥알은 한 톨도 남기면 안 된다, 사소한 생활습관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적했었다. 혹여나 반찬투정이라도 하면 나를 무섭게 내려다보았다.

  아빠 말이라면 뭐든지 열심히 새겼던 나는 이제 더 이상 모순되는 아빠의 행동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쌀 한 톨도 귀한 거라며! 뭐든 간에 그냥 감사히 맛있게 먹어!’ 라고 소리 지르고 싶던 걸 꾹 눌러 삼켰다.









19세 여동생은 학교를 자퇴하고,
53세 엄마는 교회를 그만두고,
55세 아빠는 밭을 맡기고,
26세 나는 가족과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성질부리는 큰 딸이 302일 간 기록합니다.

숨겨둔 장면은 여기에서 
https://www.instagram.com/travel_of_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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