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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첸 Nov 11. 2018

#04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여행


  “참 그때 우리가 어떻게 넷이서 시간을 맞췄는지 몰라. 이번에 다 같이 지리산 가려는데 은빈이 너 일 때문에 미루고, 어렵게 일정 맞추니까 이번에는 또 수빈이가 일 생기고 어쨌든 일정을 아직도 못 잡고 있잖아. 와. 정말 우리가 같이 맞춰서 출발했던 게 만만한 게 아니었구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 사람들이 우리 여행 이야기 들으면 다들 놀라움을 표현하잖아. 그게 그럴 일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실감이 나.”


  엄마도 지금이니까 이렇게 웃으며 말하지 그때는 우리 모두가 쉽지 않았다. 박규대씨가 여행을 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너 때문이잖아 임마! 너가 울어가지고. 송경서도 협박을 하는데 안 갈 수가 없잖아. 안 가면 평생 원망 들을까봐 무서워서 갔지.”


  아빠는 지금도 어쩔 수없이 끌려간 여행이라고 명명한다.     








  여행 전, 우리는 모든 걸 정리해야했다. 고3을 앞둔 수빈이가 가장 간단했다. 자퇴서를 내기만 하면 됐으니까. 농부 아빠는 결정하기까지가 어려웠지 생각보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나름 순조로웠다. 일찌감치 팔릴 줄 알았던 감자가 불행히도 풍년기근으로 1톤 넘게 저장고에 썩어가고 있어 무조건 내다팔아야만 했고, 밭도 일 년간 놀릴 수 없으니 대신 농사지을 분을 수소문해야 했다. 농약 치는 게 당연한 어르신들 사이에서 유기재배를 하는 분은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찾기 어려웠다.

  정작 여행을 가겠다고 먼저 제안한 엄마가 관건이었다. 교회는 그만둘 수 있었지만 아픈 외할머니를 걱정하던 형제들의 만류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의 장례로 여행은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되었다. 한동안 엄마는 마음으로 작별하지 못했던 외할머니를 따뜻이 보내드리기 위해 오로지 기도하고 묵상했다.


  “근데 우리 형편에 장기간 가족여행을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어렵지 않을까?”


  어느 날 문득 힘없는 엄마의 질문에 비친 절망감은 나를 가만두지 못하게 했다. 이후에도 홀로 계시는 외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이전보다 자주 외가댁을 오가던 엄마가 도리어 마음에 쓰였다. 지금 아니면 평생 한이 될 거란 엄마의 힘 있던 목소리를 되찾아주고 싶었다.


  “당연히 가능하지!”


  엄마 말대로 4박 5일 여행도 아니고 장기간 여행은 경제적으로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집 형편에 소농(小農)이 무슨 돈을 버나, 교회 교육목사가 번다고 얼마나 버나, 나는 대학 학자금 대출 상환하랴 나 혼자 알아서 살기에도 바빴다. 하지만 현실에 주눅 들어 이제 와서 여행이 가능할까 묻는 엄마의 질문은 나의 사회운동가적 자아를 발딱 일으켜 세웠다.


  “엄마는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데?”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돈을 벌고 싶다면 통장을 먼저 확인하는 게 맞지만 여행을 가고 싶다면 자신이 원하는 여행을 마음껏 그려보는 게 우선이니까. 나는 엄마에게 최면술을 걸 듯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여행이 무엇인지 명확히 자문해보라 권했다.


  “음… 난 어떤 여행을 하든 크게 상관없어. 새로운 나라와 문화들 사람들만 볼 수 있으면 돼. 전 세계를 다녀도 좋겠지만 유럽은 꼭 가보고 싶어.”


  엄마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신속하게 나머지 식구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했다.


  “박수빈, 넌?”


  “나? 나는 그냥 떠나기만 하면 돼.”


  “아빠는?”


  “난 하는 수 없이 가는 거야. 의견 없어.”


  양손을 맞부딪친 내 박수소리가 명랑하게 울려 퍼졌다.


“그럼 딱이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잖아.”


  돈 없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공유되는 일반적 통념을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한계로 삼을 필요도 없었다. 단지 다양한 선택에 필요한 참고와 지침서로 활용하며 현실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면 되었다.


  “우리 유럽 시골 농장들이랑 공동체들을 돌아다니자!”


  실은 현실가능한지의 여부는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어 여린 넝쿨이 어느새 담을 뒤덮듯 머리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이 때가 되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생태공동체 같은 곳들은 한 번 가보고 싶기는 했지.”


  의견 없다던 아빠가 슬쩍 한 마디 던졌다.


  “공동체라면, 영성공동체들도 갈 수 있는 거야?”


  누가 목사 아니랄까 봐. 힘없던 쭈구리 엄마도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당연하지! 유럽에 공동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농장에 가서 농사짓는 거야? 그게 무슨 여행이야!”


  내 말을 듣던 동생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에이. 농사만 짓는다고 생각하면 안 돼. 이런 여행이야말로 현지인들하고 같이 살면서 제대로 여행하는 거지! 그 나라 문화 배우고, 친구도 사귀고, 가까운 동네에 숨겨진 여행지도 다닐 수 있어. 호스트들이 직접 가이드도 해주지. 그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한다~~~”


  5년 전에 혼자 우프(WWOOF, 유기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호주에 다녀왔던 기억이 한몫했다. 주위에 생태·영성공동체를 다녀왔던 지인들도 있어 든든했다.


  “너무 좋다! 규대씨랑 은빈이 농사짓지 다들 공동체 좋아하지, 우리랑 너무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엄마랑 아빠는 이미 결정한 눈치. 동생은 미간에 주름이 여전했지만….


  “나 런던에서 뮤지컬 꼭 봐야 한단 말이야.”


  “아이고, 걱정 마세요~ 틈틈이 관광도 할 거야~~~”


  시커멓던 밤, 무엇보다 한낮처럼 생기 도는 엄마의 목소리가 기분 좋았다.








/ 학교를 떠난 19세 고3 동생
/ 교회를 떠난 53세 목사 엄마
/ 밭을 떠난 55세 농부 아빠
/ 집을 떠났던 26세 오춘기 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1년 간의 유럽가족여행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옵니다. 

사진은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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