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도 크나큰 이벤트였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 그동안 미뤄놓았던 정리를 몰아서 하던 중, 외가 친척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감자 팔기에 합세했다. 지인의 지인들까지 홍보를 가세한 며칠 후 첫째 이모가 엄마에게 전화해 환성을 질렀다.
“언니! 기적이야~~~!”
기적적으로 수백 건의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1톤이 넘는 감자가 드디어 갈 곳을 찾았다니!
택배 상자에 담긴 감자들도 두둥실 어깨춤을 추는 것 같았다.
아빠 밭도 절친한 이웃이 맡아주기로 했다. 아저씨께서는 유기재배하며 잘 지키고 있을 테니 마음 놓고 다녀오라 하셨다.
엄마 교회 교인들은 한 명 한 명 손 글씨로 쓴 편지와 그동안 고마웠다는 마음이 담긴 선물다발을 건넸다. 정 많은 권사님들은 송목사님 못 봐서 어떡하냐며, 먼 길 가는데 몸 상하지 말고 건강하게 다녀오시라며 눈물을 훔치셨다고 한다.
수빈이 친구들은 여행에 대한 동경으로 부럽다고 난리였고, 50대 중반의 부모님 지인들은 어쩜 다 그만두고 떠날 수 있는지 대단하다, 잘했다는 박수를 보냈다.
“너희들 하고 싶은 걸 젊을 때 하는 게 참 부럽고 좋구나. 잘 다녀와라. 다녀와서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고.”
인생의 후반부를 지나고 계시는 작은 외할아버지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떠나는 여행처럼 저마다 의미를 붙여주었다. 잊고 있던 오래된 꿈을 기억해내며 우리의 선택을 용기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미루고 미루던 작별인사를 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무도 울지 않았다. 농장 식구들과 나는 마치 다음 날 만날 것처럼 웃으며 헤어졌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내가 가족들과 함께하게 된 걸 축하해주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면 특히나 내게서 짙게 배어나던 아빠의 빈자리도 이 기회에 꽉 채우겠다며,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될 거란 응원을 두둑이 챙겨주었다.
“네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 꼭 거쳐야 할 관문을 지나겠구나.”
나이만 많은 ‘어른이’들 세상에서 꼭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자주 말했던 나를 잘 알던 한 친구도 어깨를 토닥이며 잘 다녀오라 인사해주었다.
/ 학교를 떠난 19세 고3 동생
/ 교회를 떠난 53세 목사 엄마
/ 밭을 떠난 55세 농부 아빠
/ 집을 떠났던 26세 오춘기 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1년 간의 유럽가족여행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옵니다.
사진은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