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꼬깃한 세뱃돈을 나풀거리며 문방구 안을 두리번대는 어린아이처럼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다. 신나게 구글번역기를 돌리며 유럽 전역에 수백 개가 넘는 농장과 생태·영성 공동체를 살펴보며 여행지를 물색했다.
가족마다 입맛이 제각각이라 아래의 조건들을 충족하는 동시에 호스트의 상황과도 맞아야하니 장소 선정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규대 : 흡연 가능(free smoking)
은빈 : 교육농장, 텃밭정원(edible garden), 퍼머컬쳐(permaculture), 오프그리드(off-grid)
경서 : 영성공동체, 기독교, 청결, 개별 숙소
수빈 : 맛있는 거 많이많이
지구 건너편 유럽에서 답장이 오면 엄마는 점심상 차리는 일을 재치고 이메일을 수차례 읽고 또 읽었다. 네 명이 한꺼번에 같이 지낼 공간이 없어 미안하다는 내용이어도 여행을 떠난다는 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엄마는 그 옛날 아빠에게 보냈던 러브레터를 쓰듯 정성스레 답장을 적었다.
“수빈아! 와봐!”
엄마의 호출에 수빈이는 귀찮다고 입을 삐죽였다. 수빈이는 엄마가 한글로 쓴 편지를 사전 뒤져가며 영어로 옮겨 적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구글번역기로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과 각종 영작은 언어담당인 수빈이 몫이었다.
호스트와 운좋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곳들은 우리의 중요 행선지로 지도에 표시되었다. 엄마가 여행의 큰 얼개를 짜면 세부적인 교통편과 숙소는 내가, 관광지와 맛집은 수빈이가 도맡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쏘다니는 나라가 이렇다 한들 런던 빅벤과 파리 루브르박물관은 여행 목록에 없었다. 대신 시골마을 주소와 사람 이름들이 빽빽이 적혀있었다.
“은빈아! 이리 와봐!”
이번엔 나를 호출했다.
“얘, 이것 중에 뭐가 제일 예뻐?”
뜬금없이 크리스마스카드를 여러 장 보여주는 엄마.
“이건 왜?”
“곧 크리스마스니까 사람들한테 인사하려고.”
“누구한테?”
“누구긴,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호스트들이지.”
셈과 브리짓과 데이빗과 니콜라… 엄마는 이미 그 이름들을 오랜 친구 부르듯 했다.
/ 학교를 떠난 19세 고3 동생
/ 교회를 떠난 53세 목사 엄마
/ 밭을 떠난 55세 농부 아빠
/ 집을 떠났던 26세 오춘기 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운 가족(이라는)여행
1년 간의 유럽가족여행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옵니다.
사진은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