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

by 김선비

뭔가 안 풀리는 날이다. 회사에서는 신제품 판매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모니터에 그룹웨어 화면만 띄워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당장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국내 1위 제품으로 만들 비장의 아이디어 같은 걸 갖고 있었다면 내가 뭣하러 회사를 다니나. 내가 직접 차려서 내가 돈 벌지.


퇴근하고는 운동을 할까 고민했는데 주말에 걸렸던 장염이 아직 다 낫지 않아서 병원에 약을 타러 갔다. 약을 타고서라도 운동을 갈까 했지만 장염 때문에 점심을 못 먹은 나머지 너무 배가 고팠다. 집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밥을 먹고는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통 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쓸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하나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다음 책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은 게 있었는데, 주말에 미끄러졌다. 글은 재미있는데 기획이 너무 평범하다고,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른 기획을 다시 짜보고 다음주에 만나자고 했다. 맥이 빠져버렸다.


그냥 마음 비우고 놀기라도 하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이번 책은 꼭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유명해지고 싶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영 불편하다. 영화라도 한 편 볼까 책이라도 읽을까 하다가 단념하고 유튜브 5분 짜리 영상이나 보고 돌아온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꾸역꾸역 이 글을 쓴다. 이게 오늘의 최선인가보다.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인 것 같다. 그냥 접고 놀아야지. 내일은 이러지 않기를 바라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번째 책 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