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 UHD로 써야 한다.

1시간에 1000자를 채우는 기술(3)

by 김선비

그렇다면 명확한 생각이란 무엇인가? 두 장의 그림을 떠올려보자. 같은 그림이다. 그런데 한 장은 100*100Pixel짜리 BMP파일이고, 다른 한 장은 4K UHD화질이다. 둘 중 명확한 그림은 무엇일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만약 이 그림이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라면 전자의 그림은 네모난 모자이크처럼 되어 있어서 이게 고양이인지 식빵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한편 4K UHD화질의 고양이 그림은 고양이의 털 한 가닥 한 가닥, 발톱 하나까지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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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4K UHD의 유려한 선과 100Pixel 짜리 삐뚤삐뚤한 그림의 이미지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동요에 대입해보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하늘. 이 동요를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다. 명확하기 때문이다. 원숭이 엉덩이에서 하늘까지 향하는 연상의 알고리즘이 마치 4K UHD 사진처럼 유려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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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하나를 빼보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원숭이 엉덩이가 왜 사과인가? 뜻이 불명확한 문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썩 나쁘지는 않다. 사과와 원숭이 엉덩이 사이에는 빨갛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떠올리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럼 하나를 더 빼보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원숭이 엉덩이가 맛있다고? 중국 어느 지방에서는 원숭이 골로 요리를 해 먹는다던데 원숭이 엉덩이로도 요리를 하는 건가? 닭똥집처럼 원숭이 똥집도 튀겨먹거나 양념에 볶아먹을 수 있는 건가? 논리의 징검다리가 하나 생략될 때마다 우리는 그 빈 자리를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중간에 징검다리가 하나 빠졌으니 한 번에 두 개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쭉 뻗고 점프, 도약해야 한다. 논리의 ‘비약’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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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에는 그런 공통점이 있다. 논리의 빈틈이 너무 많다. 징검다리를 너무 많이 빼먹었다. 그 빈틈은 독자가 알아서 채워야 한다. 다리를 너무 많이 찢어야 한다. 자연히 오해가 발생한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보면 다리가 찢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려면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글의 논리를 더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다. 독자가 질문하고 상상할 여지, 이 글을 잘못 이해할 여지를 원천 봉쇄시켜버리는 것이다. 누가 봐도 고양이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명확한 4K UHD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가령 페미니스트들이 많이 하는 “남자는 잠재적 성범죄자다.”라는 주장을 보자. 이 주장은 매우 자극적이다. 성범죄자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는 존재들이다. 공개처형을 당해도, 물리적 거세를 당해도 싼 존재들로 여겨진다. 차라리 살인자나 강도가 더 떳떳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성범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할 때는 매우 촘촘한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명제에는 단 하나의 징검다리도 없다. 마치 유격 훈련장에서 도하훈련을 하듯, 남자에서 성범죄자로 한 번에 이동한다. 당연히 남자들로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왜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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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의 빈틈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워넣게 하지 않으려면, 그 빈틈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게 근거다. 가령 “성범죄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기 때문이다.”라는 근거를 댈 수 있다. 성범죄자의 절대다수는 남성이다. -> 고로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다, 가 되었다. 산 중턱에 쉼터가 하나 생겼다. 조금은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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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성범죄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고 해서 남성이 잠재적 성범죄자라 할 수 있는가? 성범죄자는 남자의 극소수일 뿐이고, 대다수의 선량한 남자들은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반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에 대한 재반론을 준비해야 한다. “남자들의 대다수는 야동을 본다. 야동은 여성을 인격을 갖춘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만 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동을 보는 남자들은 여자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추행할 수 있는 노리개로 여기게 된다.” 하는 식으로 재반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자의 입장에서는 또 반론을 제시할 수 있다. “남자들이 야동과 현실도 분간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야동은 판타지다. 어벤져스를 봤다고 아이언맨처럼 옥상에서 뛰어내리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 또 거기에 대해 반론을 준비한다. 아마 이런 식의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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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의 대다수는 남성이다. 물론 모든 남성들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야동을 본다. 그리고 야동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 독립적인 인격도 감정도 없는 섹스인형으로 묘사한다. 이런 여성혐오적 콘텐츠에 노출된 남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정상인들의 경우, 그리고 대부분의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과 이성, 사회적 체면이 그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하지만 그게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다. 술에 만취했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재해로 공권력이 붕괴되었을 수도 있다. 남성의 본성은 그때 나온다. 즉, 남성은 그 안에 성범죄의 위험성을 갖고 있다.


썩 잘 쓴 글은 아니다. 이 안에 담긴 논리 역시 완벽하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확률이 1만분의 1도 안 되는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하여 남성을 성범죄자 취급하는 게 옳은 건지, 오히려 남녀 간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성적 호기심마저 범죄적 행위로 인식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하는 반론을 할 수 있다. 완벽한 논리를 만들려면 이러한 반론들에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완성이란 없다. 반론의 반론의 반론의 반론. 그렇게 논리의 계단이 촘촘해질수록 글은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독자의 억측이나 오해가 발생할 여지가 줄어든다. 4K UHD 화질의 이미지처럼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명확한 글이 된다.


중언부언 없이, 불필요한 글자 수 늘리기 없이 꼭 필요한 문장과 단어들 만으로 한 시간에 1천 자를 채우는 기술은 그것이다. 생각이 명확하면 그 명확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히 많은 단어와 글자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들을 쓰다 보면 글자 수는 자연스럽게 찬다. 100*100 픽셀 BMP 파일보다 4K UHD가 바이트 수를 더 많이 잡아먹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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