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준비없이 부모가 된다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을 보고

by 김선비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을 봤다. 남자는 서른셋, 여자는 스물에 국제결혼을 해서 아들과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8년 차 부부였다. 말로는 부부라고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부부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남편은 회사가 부도난 이후 2년 동안 집에서 놀고 있었고, 생계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의존했다. 그러나 집에 있으면서도 집안일이나 육아에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다.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다가 아내가 밥을 차려주면 먹고, 다시 게임을 하러 들어갔다. 가끔씩 아이가 울거나 짜증을 내면 나와서 언성을 높이며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고, 아내에게도 일상적으로 욕설과 모욕적인 말들을 했다. ㅆㅂ년과 ㅆ년이 추임새처럼 붙어 다녔다. 남편과 아내라기보다 주인과 종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관계였다.


남자는 찌질이였다. 관리되지 않은 체형과 외모, 그리고 무직. 분명 밖에서는 큰 소리 한 번 못 내고 다닐 법한 남자였다. 그런데 집에서만은 왕이었다. 작고 힘없는 아이들, 그리고 아무런 연고 없이 만리타국에서 혈혈단신 이주해 온 이방인인 아내 앞에서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폭군이었다. 그건 분명 성숙한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고, 저렇게 나이들면 안 된다고 할 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왜 저렇게밖에는 할 수 없는 건지, 짐작이 가는 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남자가 돈을 못벌면 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여자들도 남자처럼 고등교육을 받는다.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대기업에 다녀서 남자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여자들도 많다. 하지만 남자는 돈을 벌어서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성역할 고정관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건 효율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존심의 문제다. 남자가 돈을 못 벌어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 노동을 한다는 건 남성으로서의 존재감을 거세당하는 것과 같다. 기성세대일수록, 가부장적 교육을 받았을수록 그런 성향은 더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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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직장에 다니고 남자는 집안일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남자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방구석 여포가 되길 택한다. 일거리가 없어서 집에서 놀면서도 집안일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아내가 식사를 차려오면 국이 짜네, 반찬이 싱겁네, 하면서 한 마디씩 불평불만을 덧붙인다. 평소에 아이들과는 놀아주지도 않고 소통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는 애들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냐며, 애미가 이 모양이니 애들도 닮는 거라며 아내를 몰아세운다. 그들이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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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와 같은 말들을 배우지 못한 남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남자의 본질은 전사다. 남자는 여자를 갈망하게 만들어졌다. 여자가 남자를 갈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이들은 더 큰 사냥감을 잡아오고, 적군의 목을 베어온다. 호기심이 많고 영리한 이들은 기상천외한 발명품을 만들거나 신대륙을 찾아 떠난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남자고등학교 교실 뒤편 액자에 붙어있는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라는 급훈에는 결국 남자는 여자를 얻기 위해 도전하고 경쟁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경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감정은 독이다. 냉정하고 무자비해져야, 슬픔이나 외로움, 두려움과 같은 감정적 약점에 무뎌져야 경쟁자들을 제치고 알파 메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들의 감정을 억제하도록 교육받는다. 남자는 평생 동안 세 번만 우는 거야, 남자는 겁먹으면 안 돼,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건 남자가 아니야, 하면서. 그 대신 그들은 분노를 배운다. 남자로서 권위를 세우고 자신감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욕을 하고 언성을 높여야 한다는 남성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내면화하게 된다. 그래서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라는 말 대신 “옷차림이 그게 뭐냐!”, “시간이 몇시인데 어디서 뭘 하고 쳐 돌아다니다가 이제서 들어오는 거야!”, “3등? 다음번에는 1등해라.”라는 말을 하는 남자가 된다.


그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그가 잘했다는 뜻이 되지는 않는다. 분명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제작진과의 인터뷰 중 그는 아내에게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친구들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친구들한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죽탱이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에게 그렇게 험한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내는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한국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으니까, 여자니까, 나이가 어리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렇게 하면 큰일난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아내가 장미란이나 론다 로우지였다면 절대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를 마냥 쓰레기라고만 말하지 못하겠는 건 나 역시 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배운 편이고,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내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만약 내가 뜻하지 않은 불운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사기를 당해서 가진 걸 전부 잃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도 회사가 부도나기 전에는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자격증도 따고, 저축도 하면서 건실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그도 자기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랑이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살고 싶고, 아이도 키우고 싶다. 하지만 모든 게 마음만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시작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마저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러워진다. 더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 되길, 그런 마음을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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