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하지 않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진실

by 김선비

군대 후임을 만났다. 공대를 졸업하고 치과전문대학원에 들어가서 치과의사가 된 친구다. 지금은 서울에서 봉직의(페이닥터)로 일하고 있는데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제 개원하는 거냐, 원장님되는 거냐고 물었는데 친구가 아직 그럴 계획은 없다고 했다. 요즘 의료 수가도 많이 떨어지고, 치위생사나 간호조무사들 인건비도 많이 올라서 개원을 하기에는 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봉직의로 일하면서 기회를 볼 생각이라고 했다.


공감했다. 나는 제약 영업을 몇 년 동안 했다. 의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곁눈질로나마 지켜봤다. 그렇게 지켜본 의사들의 모습은 우리가 선망하는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의 모습과는 달랐다. 물론 잘나가는 병원의 잘나가는 원장들은 어지간한 회사 부럽지 않을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적자가 나는 병원들도 있고, 몇 십, 몇 백만원의 돈을 못 값아서 법원까지 가는 원장들도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면 그냥 월급쟁이 팔자가 상팔자구나 싶다. 실적이 부진해도, 업무를 빵꾸내도, 고과를 낮게 받고 승진에 누락돼도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월급날은 돌아오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친구처럼 봉직의 생활을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수도 있다. 봉직의로 일한다면 잘나가는 대형 네트워크 병원의 대표 원장만큼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급여생활자들의 98%보다는 많이 벌 수 있을테니 말이다. 상가를 임대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의료 장비를 들여놓는데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금수저인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이상 빚을 져야 하고, 빚은 곧 리스크다.


그런데도 많은 병원들이 해마다 생기고 없어진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치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 주요 역세권에는 건물마다 두세 개씩 있고, 어지간한 번화가나 교차로에는 모퉁이마다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편의점 만큼 많다. 그 많은 원장들 중 자기 병원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개원한 원장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를 거라고, 내 병원은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 망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글쓰기. 작가. 내가 베팅을 한 이 게임의 기대값은 얼마나 될까? 물론 나는 나를 믿는다. 나의 재능과 꾸준함을 믿는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안 그랬을까? 도서관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의 저자들은, 아예 책을 출간하지도 못한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다들 나보다 글을 못써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런데 나는 내가 잘 될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답을 내지 못했다. 그냥 근거없는 낙관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지금이야 젊으니까 괜찮다. 적어도 10년 동안은 이 회사가 망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이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것이다. 10년. 그 정도 시간이면 뭐라도 되겠지. [아웃라이어]에서도 3시간 씩 3년, 1만 시간이면 누구나 한 분야의 달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정말일까? 10년 내로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설령 유명한 작가가 된들, 지금 회사에서 받는 돈 만큼이라도 벌 수 있을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글쓰기 따위 일찌감치 때려 치우고 주식이나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아닐까?


물론 말 뿐이다. 이렇게 써놓고도 나는 주식이나 부동산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글을 쓸 것이다. 나는 다르다는 근거 없는 낙관 하나로 살 것이다. 그 끝에 뭐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자야지.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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