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좋은 플랫폼인가?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by 김선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정말 좋은 플랫폼인가? 얼핏 그렇게 보인다. 요즘 사람들은 긴 글을 안 읽는다. 이미지와 영상 위주다. 그래서 SNS플랫폼도 그런 니즈에 맞춰지고 있다. 이미지만 올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 150자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트위터, 1분 이상 올릴 수 없는 유튜브 쇼츠. 예전에 브런치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블로그조차 지금은 광고용 플랫폼으로 변질되었다. 블로그를 8년 동안 운영했지만 요즘에 서로 이웃 신청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인테리어 시공업자들 밖에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브런치는 진지충들의 마지막 보루다. 진지한 글을 쓰는 사람들, 그걸 읽을 인내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기계들에 잠식된 디스토피아 속 인간들의 마지막 도시인 시온과 같은 곳이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이곳은 시온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장문의 글을 읽을 용의가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나는 열심히 장문의 글을 쓰지만 남이 쓴 장문의 글은 잘 안 읽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 쓴 글이건 못 쓴 글이건 남의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수도 있다. 이곳은 자기 글을 열심히 쓰고, 남의 글도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남의 글은 안 읽으면서 내 글은 읽히길 바라는 나 같은 사람만 모인 곳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곳에 글을 쓰는가? 사려는 사람은 없는데 팔려는 사람만 모여있는 곳이라면 최악의 시장이 아닌가?


차라리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쓰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해보았다. 커뮤니티에서 유행하고 있는 주제를 파악하고, 그 주제에 맞춘 글을 쓰는 것이다. 거기에는 진지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필력으로도 충분히 차별화가 될 것이다. 많은 추천을 받고 실시간 베스트에 오른다면 꽤나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게시물 당 조회수 100도 안 나오는 내 브런치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 글들이 몇 개가 모이면 나는 네임드가 될 것이다. 여태껏 브런치에 100개도 넘는 글을 써서 구독자가 60명인데, 이 노력으로 펨코나 디시에 글을 썼으면 지금쯤 뭐가 돼도 됐을 것이다.


허황된 생각이 아니다. 소설 [회색인간]의 작가 김동식도 오늘의 유머에 심심풀이로 글을 쓰다가 데뷔하게 되었다. 원효 대사도 당시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던 불교 이론을 백성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불경으로 노래를 만들어 저잣거리에서 부르고 다녔다. 당시 그는 상스럽고 천박하다며 욕을 먹었지만 오늘날 불교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펨코나 디시는 저잣거리 같은 곳이다. 엘리트 글쟁이들의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날것의 천박한 언어들이 난무하는 곳이다. 그런데 결국의 내 글을 읽어야 할 사람은 그 천박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언젠가 알려지겠지, 노력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되는 건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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