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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n 03. 2023

자기 중심적인 대화법

결혼정보회사 썰 EP.2

금쪽상담소 유튜브 영상


소개팅을 나가기 전 시간이 좀 남아서 TV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는데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가 눈에 띄었다. 오늘의 금쪽이는 나는 솔로 모태솔로 특집의 광수(34세, 변리사)와 영수(39세, 수학강사)였다.


방송에서는 두 사람에게 모솔 탈출 솔루션을 주기 위해 실제 여성과의 모의 소개팅을 시켜보았는데 영수의 행동을 본 오은영쌤이 영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여자와 한 공간에 있기만 해도 긴장해서 얼어 버리고,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부담스러우니 다른 이야기하자며 말을 돌리던 영수가 정작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남에게는 관심이 하나도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오은영쌤의 설명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대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마치 탁구를 치듯 질문과 답변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인데 영수는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이야기로만 대화를 채우려 하고, 그러다보니 부담과 긴장감이 생기는 것이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다. 영수처럼 여자 앞이라고 긴장해서 얼어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자를 웃기겠답시고 오디오를 채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유용성이 없는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이유가 있고, 기승전결이 있다. 말하는 걸 그냥 유튜브 자동자막으로 받아적어도 그럴싸한 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말을 잘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건 다른 문제다. 말은 나 혼자 하는 것이지만 대화는 함께 하는 것이다. 대화를 잘하려면 내가 할 이야기를 잘 하는 것 뿐 아니라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들어주기도 해야 하고, 그 말에 적절한 반응과 질문을 해주어서 상대방이 더 좋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물꼬를 열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리고 연애를 잘 하려면 말이 아니라 대화를 잘해야 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찾는 거라면 소개팅을 할 게 아니라 유튜브를 켜면 된다. 나는 말을 잘 한다고 했지만, 알쓸신잡이나 차이나는 클라스에는 나보다 훨씬 말 잘하는 사람이 한 트럭이다. 굳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어 소개팅에 나갔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져야지, 질문을 많이 해야지, 하면서.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잘 들어갔냐고 연락을 해보았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노란 숫자 1은 아직도 그대로다. 이번에도 김현민이 김현민 해버린 걸까? 또 내 이야기만 해서 상대방이 질려버린 걸까? 처음에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원활하게 대화를 유도해봐야지 했는데 역시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편해지니 본성이 드러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잘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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