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썰 4편
세 번째 소개팅에 까였다. 열 번 중에 세 번이니 이제 일곱 번 남았다. 일곱 번만 더 까이면 내 300만원이 공중분해되는 거다.
슬슬 쫄리기 시작한다. 설마 열 번 안에 내 인연이 없겠어? 무작위로 소개받은 것도 아니고, 자기 소개서도 쓰고 두 시간 동안 면담도 했는데 나랑 맞는 사람이 설마 하나도 없겠어? 했다. 그런데 슬슬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소개팅이라면 누구 못지 않게 했다. 100번까진 모르겠지만 50번은 넘게 했다. 하지만 그 중에 내 인연은 없었다. 결혼은 물론이고 1년 이상 지속된 소위 말하는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열 번 더 한다고 될 거란 보장이 있는가? 50번을 해서 안 된게 60번을 한다고 될까? 안 된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나와 만났던 세 명의 여성들이 나에게 했던 코멘트 중 부정적인 게 있었냐고 물었다. 없었다고 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잘 이끌어주었고, 매너도 있었다고 했다. 다만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만 해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매니저가 여자라서다.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 여자가 하는 말은 믿으면 안된다,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며, 어떤 면에서는 남자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적어도 연애에 있어서, 여자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녀 관계에서 여자와 남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애는 남자의 구애로 시작된다. 남자는 자기의 매력과 경쟁력을 보여주고, 여자는 자기한테 다가온 남자 중에 제일 나은 남자를 선택한다. 남자가 블로거나 유튜버라면 여자는 구독자고, 남자가 영업 사원이라면 여자는 고객이며, 남자가 음식점 사장이라면 여자는 손님이다. 물론 구독자, 고객, 손님의 니즈는 중요하다. 손님의 니즈를 외면하는 식당이 잘 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말해줄 수 있는 건 극히 피상적이다. 국밥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이 국밥을 왜 먹냐고 물어보라, 그들이 뭐라고 대답할까? 맛있어서라고 할 거다. 유튜브 구독자에게 이 유튜브를 왜 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재밌어서라고 할 거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7천원 내고 국밥 먹는 사람이 그 이상의 것을 고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국밥집을 차리려는 사람, 유튜브를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어떻게 맛있는 국밥을 만들고, 재미있는 유튜브를 찍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건 손님이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30년 전통의 할매 국밥집 사장님한테 물어봐야 한다. 그럼 고기를 얼마 동안 삶고, 뭘 베이스로 육수를 내고, 어떤 조미료로 맛을 내는지 알려줄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여자들한테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물어봐라. 배려해주는 남자, 허세 부리지 않는 남자, 순진한 남자가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면 말문이 막힐 거다.
허세 부리지 않는 순진하고 무해한 남자, 나잖아? 나랑 사귈래?
이건 좀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봐라.
너 지난번에 배려심없고 허세 많은 남자 만나서 엄청 마음 고생했잖아? 그 남자 좋아서 만난 거 아냐? 그럼 그 남자는 왜 좋아했던 건데?
당연한 거다. 국밥집 손님은 이 집 국밥이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걸 고민하는 건 국밥집 사장님 뿐이다. 그러니 내 행동이 뭐가 문제였는지 알고 싶다면 남자한테 물어야한다. 국밥을 만들어본 사람, 팔아본 사람, 돈을 벌어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7천 원 주고 국밥을 사먹은 사람이 아니라. 그런데 여기엔 그게 없다. 내 행동에 대한 코멘트를 해준 것도 소개받은 상대방 여자고, 그걸 해석해서 내게 알려주는 매니저도 여자다.
그래서 불안하다. 매너 있고 생각 깊고 성실하고 말도 잘하고 인성도 좋은 사람인데 이성으로서의 끌림은 조금 부족하다는 말을 7번 더 듣고 끝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