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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Sep 04. 2023

어쩌면 연애 세포 자체가 말라버린 것일지 모르겠다.

아는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도 얼른 장가를 가고 싶은데 여자 만나기가 어려워서 결혼정보회사를 한 번 해볼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건 어떤지, 어떤 여자들이 나오는지 물어봤다.


나는 다 괜찮았다고 했다. 열 번 중에 다섯 번했고, 전부 다 실패했지만 딱히 이상한 여자가 나온 적은 없었다고 했다. 직업도 다들 번듯했고, 나보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여자들도 있었으며, 외모도 내 기준에서는 합격선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사진을 보여줬는데, 동생이 다 별로라고 했다. 자기는 외모를 많이 본다고, 나는 솔로로 치면 3기 정숙(1994년생 교통캐스터 겸 연기자이며, 나는 솔로의 올타임 레전드급 미녀 중 한 명으로 방송에 출연한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정도가 아니면 이성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했다는 여자 사진도 보여주었는데 정말 미인이었다. 나 같았으면 진작에 주제 파악하고 겸상도 못했을 수준이엇다.


나는 솔로의 역대급 미녀 중 하나로 평가받는 3기 정숙님의 모습이다.


정신차리라고 했다. 180cm 넘는 전문직 훈남들도 저런 여자랑 말이라도 한 번 섞어보고 싶어서 안달인데 어떻게 그들과 경쟁을 하려 하냐고 했다. 너나 나 같은 흔남은 별로 예쁘거나 날씬하거나 어리지는 않지만 그냥 평범하고 모난 데 없는 여자 만나서 적당히 애 놓고 사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그렇게 눈이 높아서는 평생 장가 못 갈 거라고 했다.


정말 그게 맞는 건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다섯 번의 소개팅. 그리고 다섯 명의 여자들. 물론 다들 딱히 하자는 없었다. 몸무게가 60kg을 넘지도 않았고, 심각하게 못생기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스킨쉽을 할 수 있겠다 느낄 정도의 매력은 다들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면 되는 건가? 서른다섯. 이제 남은 평생을 같이 가야 할 상대를 찾아야 할 나이인데, 이 정도의 끌림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죽고 못살 것처럼 사랑해도 결혼생활은 가시밭길이라고 하던데.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관계를 시작해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어차피 이 여자보다 괜찮은 여자가 나를 이 정도로 좋아해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서 만나다보면 좋아지겠지, 하고 시작했더랬다. 그런데 다 끝이 안 좋았다. 아무리 숨기려해도 여자들의 촉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기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만큼 이 남자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 그 불안감을 내 앞에서 표출했고, 눈물을 보였다. 그걸 보고서도 차마 계속 만나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끌림을 느낄 수 있는 세포 자체가 나에게서 증발해버린 것 같다는 것이다. 스물아홉 때까지는 그런 끌림을 느꼈던 것도 같다. 직장에서 알게된 여자였는데 나이는 나랑 동갑이었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폴댄스, 사이클, 헬스 등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매가 작살났다. 뭘 입어도 200%소화해냈다. 키는 160cm 초반이었는데 165이상은 되어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때는 그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이런 저런 바보짓도 했더랬다. 물론 따로 만나서 밥 한 번도 못 먹어보고 광속으로 차였지만.


그런데 그 이후로는 그런 끌림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다 그냥저냥이었다. 딱히 싫은 건 아닌데 딱히 이 여자에게 내 모든 걸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 늘 그 사이 어딘가의 애매한 곳에 걸쳐있었다. 물론 나는 솔로에 출연했을 때는 진심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처럼 절실했다. 그런데 만약 그게 방송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였더라도 그 정도로 절실했을까? 그 자리에 카메라가 없었더라도 나에 대한 호감이 없는 게 거의 확실한 여자를 위해서 편지를 쓰고, 누군가와 다투고, 내 마음을 고백했을까? 안 그랬을 거다. 그냥 첫 데이트 때 대충 기류를 파악하고, 아,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했을 것이다. 지하철 역 입구까지만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늘 즐거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지고, 푹 쉬세요!"하고 카톡을 보냈을 것이다. 다음 날에 한 번 더 만나자고 연락 정도는 해보겠지만 답장이 한 시간 넘게 걸리거나, 단답이면 접었을 것이다. 아닌가보다, 하고 집에 가서 배 긁으면서 넷플릭스나 봤을 것이다. 결정사를 통해 만났던 지난 다섯 명의 여자들과 그랬던 것처럼.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다 겪어봐서 시들시들해진 거라 하던데 그렇지도 않다. 나는 지금까지 연애를 여섯 번 했지만, 기간은 합쳐서 1년이 안 된다. 아마 그녀들은 나랑 사귀었다고 인정하지도 않을 거다. 나는 분명 모태솔로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연애 커리어는 모태솔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겪어본 것보다 안겪어본 게 훨씬 많다. 그러니 나에게는 모든 게 새로워야 하고, 설레야 한다. 그런데 안 그렇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재미가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건강검진해보니까 서맥(성인의 정상적인 맥박수는 60~80인데 나는 40이다.)이 나왔던데 매사 시들시들하니 심장도 잘 안 뛰나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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