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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Sep 03. 2023

흥미롭지만 연인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대화들

소개팅 나가서 거울치료한 썰

소개팅에 또 실패했다. 두 번째 만남을 갖고 세 번째 약속을 잡던 중 굳이 더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상대방이 말했다. 현민씨 너무나 좋은 사람이지만 저랑은 조금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이미 수십 번은 더 들어본 상투적인 멘트였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나도 수십 번은 해본 상투적인 말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긴 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자동응답기 같이 뻔한 이야기만 하는 여자들과 달랐다. 음악이나 영화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다들 취향이 획일적이라 재미가 없다, 그래서 예술영화나 해외 음악을 즐겨듣는다, 했던 기억이 난다. 같이 영화나 전시, 공연을 보고 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성으로서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대화였지만 그 안에 남자로서의 나, 그리고 여자로서의 너, 연인으로서의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을 만나서 도합 대여섯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안 그녀는 정작 나에 대해 물어본 게 없었다. 그러니 말을 할 게 없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도, 나는 솔로를 즐겨본다는 것도, 유튜브를 3개월 정도 열심히 해봤지만 지금은 안한다는 얘기도, 아무 것도 안했다. 어떤 이성을 좋아하는지, 자만추인지, 결혼은 언제쯤 하는 게 적당하다 생각하는지, 하는 얘기도 전혀 안 했다.


그래서 직감했다.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그런데 연락은 또 그냥저냥 됐다. 세 번째 만남이 성사가 되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게 된다고? 그래서 다음번에 만나게 된다면 이성관계로서의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친절하게도 상대방 쪽에서 먼저 그만 만나자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남자들은 다들 자기 얘기만 해. 자기 친구가 어떻고, 직장일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몇 시간씩 하면서 정작 앞에 앉아 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를 않아. 그래서 관심이 없는가 보다, 하면 연락은 와. 다음번에 또 보자고.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가깝게 지내는 여자 지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만났던 남자들이 다들 자기 얘기만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녀가 좀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이성 관계로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먼저 꺼내면 될 거 아냐? 양쪽이 주고 받는 게 대화지 남자 혼자 이야기하고, 여자는 면접관마냥 평가하고 있겠다는 거야? 막상 사귀지도 않는 사이에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하면 부담스럽다고 도망가버릴 거잖아? 친구 이야기, 직장 이야기를 통해서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 나랑 잘 맞겠구나, 하는 것들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거울치료를 해보니 알겠다. 물론 친구 얘기나 직장 얘기를 하는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사람은 비슷한 이들과 어울리게 마련이니 내 친구 이야기를 하는 건 곧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고, 직장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다. 


하지만 그게 주가 될 수는 없다. 연애를 하려고 만났으면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면접을 보러왔으면 이 회사에 왜 지원했고, 내가 뭘 할 줄 아는지를 이야기해야 하듯, 연애를 하려고 만났으면 당신의 어떤 점이 좋고, 나는 당신에게 뭘해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그게 지나치면 또 부담스럽다며 도망가버리겠지만. 그래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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