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투표로 보름에 한 명씩 사람을 죽이겠다고?

SBS 국민사형투표에 대하여

by 김선비

https://youtu.be/E7akB37Ob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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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사형투표라는 드라마를 봤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말 그대로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형 투표를 하는 것이다. 개의 탈을 쓴 미스테리의 인물이 흉악범죄를 저질렀음에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은 자들을 납치한다. 그리고 보름에 한번씩 그들의 죄목을 밝히며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사형 집행 여부에 대한 투표를 한다. 그리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그를 죽인다. 첫 화에서는 아동 성착취물 유포범, 두 번째 화에서는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3명의 남편을 죽인 여자가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만약 이런 일이 현실에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열광할 거다. 아동 강간범 조두순, 연쇄 살인마 유영철, N번방의 성착취물 유포의 조주빈,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이은해.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국민투표도 필요없다, 그냥 죽여라, 이왕이면 공개처형으로 해라, 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들의 죄가 가볍다고 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은 분명 죽일 놈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국민의 혈세로 지은 교도소에서 멀쩡히 삼시 세끼 밥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해야 한다.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에는 죽일 놈들이 그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일 놈이라는 게 뭘까? 죽을 죄를 지은 놈이다. 그러면 죽을 죄란 뭘까? 직관적으로 말하면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일 것이다. 인간의 생명의 값어치는 모두가 동등하기에, 그리고 인간의 생명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타인을 죽인 대가는 나의 죽음으로밖에 치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사람을 죽인 사람이 겨우 그것 밖에 안될까? 이 드라마에서는 한 달에 두 번씩 국민투표를 한다. 1년이면 스물네 명이다.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다. 직접 흉기를 휘둘러서 죽였건, 극한의 스트레스로 자살에 이르게 했건, 실수로 죽였건,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한 달이 아니라 하루에 두 번씩 해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민 투표를 점심 시간에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씩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게 될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별해서 죽여야 한다. 나쁜 놈들 중에 더 나쁜 놈으로, 죽어 마땅한 놈들 중에서 열번 죽어도 모자랄 놈으로.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수많은 나쁜 놈들 중에 더 나쁜 놈을 걸러낼 방법이 없다. 유영철? 이은해? 물론 죽일 놈들 맞다. 그렇다면 IMF사태를 불러일으킨 대기업 총수와 정부 관료들은? 유영철의 손에 죽은 여자들이 많을까? IMF사태로 실직해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들이 많을까?

윤일병 사건의 가해자들? 물론 죽일 놈들 맞다. 하지만 부대 내에서 이런 부조리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묵인했던 상부 지휘관들,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군 문화를 개선하지 못한 국방부, 인격 파탄자들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현역 장병으로 입대시킨 병무청은 윤일병의 죽음에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국민 투표는 이런 복잡성을 반영할 수 없다. 그러니까 국민 정서로 퉁쳐버린다. 무조건 직접 칼을 휘둘러서 죽인 놈이 제일 나쁜 놈이다. 피해자가 여자라면 더 나쁜 놈이다. 일본으로 친다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서 수십만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도조 히데키 수상보다 콩크리트 여고생 살인사건의 범죄자들이 더 나쁜 놈들인 것이다.


결국 국민사형투표가 할 수 있는 건 중범죄자들에게 합당한 벌을 주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게 아니다. 그냥 카타르시스. 사이다를 먹여주는 것이다. 정의가 구현된 것 같은 기분, 이제 좋은 세상이 될 것만 같은 기분, 저들을 심판함으로써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사이다는 맛있지만 몸에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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