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솔사계 9기 옥순과 남자2호의 논쟁
남자2호 :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저울이 기운다고 하잖아요.
9기 옥순 : 저울이 기운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여자들이 좀 더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뜻이에요? 사람마다 달라요. 1) 각자 역량에 따라 다른 건데 어떻게 남자 여자 일반적으로 묶어서 얘기를 해요?
남자2호 : 2) 20대때는 어떻게든 한 번 해보려고 노력을 해보는 것 같아. 그런데 30대가 넘어가면 생물학적으로 달라지는 것 같아.
9기 옥순 : 여자들도 마찬가지거든요? 3) 본인한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솔사계, [나는 솔로 사랑은 계속된다]에서 9기 옥순(광고회사 재직)과 남자2호(조각가)가 언쟁을 벌였다. 30대가 넘어가면 연애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넘어간다는 말에 9기 옥순이 발끈한 것이다.
앞으로 몇 편의 글을 통하여 이 논쟁에 대해 분석해보려 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 첫 번째로 남녀를 일반화시키는 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다루어보겠다.
세상에는 30억의 남자와 30억의 여자가 있다. 그들은 모두 다르다. 다르게 생겼고, 학력 수준도 다르고, 연봉도 다르고, 경험도 생각도 다르다. 그렇기에 연애 시장에서 그들의 위치도 다르다. 예쁘고 어리고 쭉쭉빵빵한 여자라면 전문직이나 사업가 등 잘나가는 남자들을 주렁주렁 거느리고 다니겠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키 크고 몸 좋고 돈 많은 남자와 그렇지 못한 평범한 남자가 처한 상황은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남자2호는 그런 개별성을 무시했다. 60억 세상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뭉뚱그렸다. 9기 옥순은 그의 그런 이분법적 논리에 분개했다.
하지만 그의 이분법은 잘못된 게 아니다. 그게 인문사회과학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는 예외가 없다. 지구가 생겨난 이래 50억 년 동안 해는 늘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졌다. 물은 늘 위에서 아래로 흘렀고, 새벽이 지나면 늘 아침이 왔다. 앞으로 다가올 50억 년 동안에도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은 다르다. 늘 예외가 존재한다. 가령,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자녀가 장차 획득하게 될 사회적 지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돈 많고 잘 나가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더 훌륭한 선생님에게 더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그걸 통해서 성공의 문턱을 보다 수월하게 넘을 수 있다. 하지만 100%는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생계를 돕기 위해 어려서부터 공병을 줍고 신문을 돌려야 했다. 과외나 입시 컨설팅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하지만 그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현대 건설 사장과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도, 기업인들도, 유명한 석학이나 언론인, 군 장성도 대개는 남자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이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처럼 여성도 치열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하나 하나 다 반영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이론'이란 걸 만드는 의미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론은 복잡한 현실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을 만들려면 현실을 단순화시켜야 한다.
한국의 역사는 크게 고조선 -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근현대사로 나뉜다. 그런데 삼국시대가 끝나고 고려시대가 시작되는 그 순간, 통일신라의 경순왕이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순간, 세상 모든 게 뿅하고 바뀌었을까? 아니다. 왕조는 바뀌었지만 통일 신라 시대의 통치 체계, 군사 조직, 문화와 사상들은 한동안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로 무 자르듯 구분할까? 그냥 한 거다. 한국 역사가 5천 년이라고 해서 진짜 5천 토막을 내면 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도, 선생님들이 강의를 할 수도,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볼 수도 없으니까 구분하기 쉽게 고조선 -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 근현대사로 나눈 거다.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MBTI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성격을 겨우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게 문제일까? 만약 16가지가 너무 적다면, 그 두 배인 32가지로 나눈다면 모든 사람들의 성격을 100% 반영할 수 있을까? 네 배인 64가지로 해도, 여덟 배인 128가지로 해도, 심지어 100만 가지로 해도 모든 사람의 성격을 온전히 반영할 수는 없다. 인간의 성격은 60억 가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와 성격이 100%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MBTI가 왜 만들어졌을까? 왜 유행일까? 재밌으니까 그렇지 뭐. 쉽고 단순하게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니까 유행하는 거지 뭐.
앞서 말했듯 9기 옥순이 했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세상 남자와 여자는 다 다르다. 키도, 몸무게도, 지능도, 재산도, 직업도 다르다. 연애시장에서 개개인의 가치는 그 다양성에 의해 결정된다. 성별이라는 하나의 기준만으로 무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하나 마나한 말이기도 하다. 당연히 다르지.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외모'라는 조건을 넣어서 잘생긴 남자와 못생긴 남자,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로 4등분 해야 돼? 그러면 재산은? 돈이 많으면 연애하는데 유리하잖아? 부자와 빈자로 나누어서 8가지로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키는? 부모의 키는 자녀의 발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잖아? 그러니까 16가지로 하자. 그럼 지역은? 지방에 살면 연애하기 힘들잖아? 32가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 80% 이상이 맞으면 맞다고 치고 넘어가야 한다. 흙수저 출신으로 대통령까지 오른 이명박 대통령 같은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만큼 운이 좋거나 능력이 출중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의 소득 수준은 자녀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고 쳐야 한다. 인문사회학적 논의에 100%란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60억 지구인을 60억 가지의 기준으로 나누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