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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Apr 23. 2024

제약영업사원이 말하는 의대 증원

돈을 밝히는 게 왜 잘못이지?

병원에 가서 영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사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된다. 요즘에는 제일 핫한 게 의대 증원이다. 남자 원장이건 여자 원장이건, 젊건 나이가 많건 "어휴, 요즘은 의대 증원이다 뭐다 어수선한 이슈들이 많아서 원장님들도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하면서 운만 띄우면 평소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단답만 하던 의사들이 1~20분은 순삭될 만큼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의대에는 여러 전공과목들이 있다. 그 중에 소아과나 산부인과, 내과, 외과 등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데 직결되는 과를 필수의료분과라 한다. 그런데 이런 과들은 대체로 돈이 안 된다. 한국은 의료 수가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4~5천원만 내도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약값이 10만원씩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고, 국가에서 의료 수가를 통제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도 필수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돈을 만지려면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가는 게 유리하다. 성형수술이나 피부 레이저 시술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병원에서 수가를 책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입소문만 잘 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과들에는 의사들이 넘쳐난다. 압구정동이나 신사동에 가보라. 한 건물에도 성형외과나 피부과가 층마다 3~4개씩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된 게 의대 증원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서 기존에 인기가 없던 필수의료분과, 그리고 의료 서비스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시골에까지 의사들이 충분히 배치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내가 일하는 지역은 김포다. 수도권 외곽의 중소도시다. 서울 혹은 분당이나 일산, 동탄 같은 도시들에 비교했을 때 인프라가 좋은 도시라 하기엔 어렵다. 그런데도 병원은 충분히 많다. 구래동이나 장기동에는 건물마다 이비인후과, 소아과, 내과, 치과가 종류별로 있다. 병원을 가고 싶은데 주변에 병원이 없어서 못가는 일은 여간해선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역만 그렇다는 것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고 학교와 학원, 대형 마트가 있는 구래동, 장기동에는 병원이 많지만 하성면이나 대곶면 같은 외곽 지역으로 가면 병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거기엔 내과도 없고, 외과도 없고, 이비인후과도 없다. 의원만 있다. 거기 사는 어르신들은 골절이건 당뇨건 감기건 일단 아프면 거기에 간다. 한 명의 의사가 내과건 정형외과건 이비인후과건 다 본다. 의사의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한 게 아니라, 지역별, 전공별 불균형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필수의료분과에 지원하거나 지방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에 대한 혜택을 늘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병원 의사들의 높은 노동 강도와 지방의 열악한 생활 인프라, 그리고 저수가.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봐야 강남 서초구 성형외과 의사들만 늘어나게 될 거라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다. 양쪽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근무할 의사,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분과에서 근무할 의사가 부족한 거지 의사 자체가 부족한 게 아니라는 의료계의 말도 맞고, 일단 의사의 전체 수를 늘리면 낙수 효과에 의해 비인기과나 지방에도 결과적으로 의사가 공급될 거라는 정부의 말도 맞다. 그러니까 의사들의 근무 환경이나 처우를 개선해야 하는 것도 맞고, 절대적인 수를 늘려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럼 둘 중에 뭐가 우선인가? 그건 나도 모른다. 정부의 고위 공무원들도, 전문가들도, 그 밖에 누구도 100% 장담할 수는 없을 거다. 어떻게 될지는 까봐야 아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웃긴 건, 이 이슈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이다. 이 이슈에 대한 유튜브 영상이나 기사를 보면 어김없이 의사들의 탐욕을 지적하는 댓글이 달린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신성한 일을 해야 할 의사들이 제 밥그릇 챙기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의사가 늘어나면 병원도 많아질 거고, 기존 개원의들은 더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분명 그것도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세상에 자기 밥그릇 안 중요한 사람도 있나? 해마다 연봉 협상을 하는 시즌이 되면 우리 부서는 몇 % 올려줬는데, 다른 부서는 몇 % 올려줬네, 하는 글들로 블라인드(익명을 기반으로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 불이 나고, 혹여 동결이나 삭감이라도 하면 직원들이 줄퇴사를 한다. 이직을 할 때는 아무리 직무가 내 적성에 맞고, 워라밸이 좋고, 조직 문화가 합리적이더라도 연봉은 절대로 깎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통한다. 직장인들에게 밥그릇이라는 건 이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다 밥 벌어먹자고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의사와 일반 회사원이 같냐고 반론할 거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직업이기 때문에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신성하지 않은 직업이 어디있나? 세상의 모든 직업은 그 본질적 의미를 따지면 다 신성하다. 나 같은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은 양질의 의약품을 공급함으로써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고, 렉카차 운전하는 사람들은 위험천만한 사고 현장에서 운전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이고, 짜장면 배달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귀중한 먹거리를 배달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우리들에게 누군가 너희들은 신성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돈을 밝혀선 안 된다, 그러니 연봉을 깎겠다, 라고 하면 어떨까? 당연히 게거품물고 달려들 거다.


결국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는 거나, 우리가 노조를 결성하고, 블라인드에서 경영진을 씹어대고,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회사를 때려치우는 거나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그들도 벌어서 세금 내고, 자녀 학자금 내고, 경조사 챙기고, 삼시 먹는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다만 그들은 우리보다 조금 배웠고, 조금 많은 돈을 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이 차이다. 우리도 돈 많이 벌고 싶은데 우리는 많이 못 버니까, 그런데 더 많이 벌려고 노력하긴 싫고 그렇다고 능력도 끈기도 없는 자신을 인정하기는 싫으니까 돈이나 밝힌다며 그들을 욕하는 것이다. 돈이나 밝히는 의사들을 욕하면 나 자신은 왠지 돈을 밝히지 않는 고매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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