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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y 26. 2024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

얼마전 군대 후임을 만났다.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받는 자리였다. 홍대 근처에 있는 텐동집에 가서 덮밥도 먹고 커피도 한잔했다.


'그 동안 많이 웃은 적이 없었구나.'


그런데 문득 얼굴 근육이 저렸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한 것처럼, 오랜만에 웨이트를 한 것처럼 저렸다. 쓰지 않던 근육을 오랫만에 썼을 때 느끼는 감각이었다. 그때 느꼈다. 요즘 웃을 일이 없었구나.


그렇게 웃긴 얘기도 아니었다. 그냥 만나면 늘상 하는 군대 얘기였다. 얼굴은 산적 같이 생겼는데 마음은 수줍은 여고생 같았던 맞후임 이야기, 웨이트 같은 건 하지도 않는데 부대에서 제일 힘이 셌던 후임 이야기, 교회에서 스타크래프트 하다가 걸렸던 군종병 이야기, 지금 우리 나이랑 별로 차이도 안나는데 그때는 엄청 늙어보였던 중사, 상사 아저씨들 이야기.


그 시절 이야기를 이렇게 웃으며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땐 군대가 너무 싫었다. 한달 월급 10만원에 20대 초반 귀한 청춘을 바치고 있다는 것도 싫었고, 맛대가리 없는 짬밥을 먹는 것도 싫었고, 여자를 못 만나는 것도 싫었고, 무능한 간부들의 지시를 받으며 일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군대 2년을 안가는 대신에 내 목숨에서 2년을 까라고 한다면 그렇게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다 지나갔다. 매일 같이 집합을 시켜서 윽박지르고 인격 모독을 하던 고참도 제대했고, 내일 모레 장가간다는 후임도 제대했고, 나도 제대했다. 폐급이나 관심병사, 고문관이라 불리던 이들에게도 국방부의 시계는 공평하게 흘러갔다. 결국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굳이 남들보다 군생활 잘 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고참들이 갈군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귓등으로 흘리면서 달력에 매일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며 전역 D-Day나 계산하고 있으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사회는 다르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이번 달 영업 실적을 채워야 하고, 올해가 가기 전에 연간 실적을 채워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성과급을 못받고 승진에 누락된다. 그러니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발바닥에 불 나도록 뛰어야 한다. 국방부의 시계는 우리 편이지만, 사회의 시계는 우리 편이 아니다. 군대에서는 날짜가 지나가는 걸 보며 흐뭇해하지만 사회에서는 초조해한다. 커피도 안 마시고 술담배도 안하는데 과민성 대장염과 역류성 식도염, 장염을 달고 산다. 스트레스성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 그 시절 했던 순진한 고민들이, 어느 대학 나왔고 집이 얼마나 잘사는지 따위를 따지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관계들이, 꾸밈없고 계산없던 웃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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