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왜 영포티에 분노하는가?

나랑 상관은 없는데 묘하게 짜증나는 사람들에 대하여

by 김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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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블라인드에서 저격을 당한 적이 있다. 시무식 때 직원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던 걸 두고 어느 동료가 '별로 잘 부르지도 못하면서 무엇하러 올라갔냐?', '노래는 노래방 가서나 불러라.' 하며 비아냥대는 글을 올렸던 것이다.


당시에는 적잖이 상처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참 우습다. 저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내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도대체 그의 인생에 무슨 피해를 주는 일이었을까. 실은 부러웠던 거다. 자기도 무대에 올라가서 사람들한테 박수도 받고 관심도 받는 짜릿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자기는 용기가 없어서 못했으니까, 근데 자기보다 잘난 거 하나 없어보이는 나는 했으니까 짜증났던 거다.




요즘 영포티가 화두다. 나잇값 못하는 사십대. 주책맞게 젊은 애들이나 입는 옷을 입고, 젊은 애들이나 드나드는 핫플레이스를 기웃거리는 사십대, 주제 파악 못하고 어린 여자 만나고 싶어하는 사십대.

뭐 좀 꼴불견일 수는 있다만, 그게 댁들 인생이랑 무슨 상관인가? 결혼하고 아이 낳아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나가야 할 나이에 유흥을 즐기고 해외 여행이나 골프 라운딩을 다니고 외제차나 명품을 사다가는 나중에 늙어서 깡통을 차게 될 것이다. 공유나 정우성처럼 잘 생기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십대 남자가 이십대 여자를 만나려 했다간 당연히 거절당하고 혼자 방구석에서 벽이나 긁으면서 늙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그들이 감당하면 될 일이다. 그들이 노총각으로 늙어가고 노후 대비를 안하는 게 당신들 인생에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영포티에 분노하는가? 짜증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 사회에 살고 있다. 조선 시대처럼 양반이나 왕만 화려한 옷을 입고 백성들은 흰 무명옷만 입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상놈은 상놈끼리 양반은 양반끼리만 결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된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가도 되고, 배 나오고 머리칼 빠진 40대 아저씨가 20대 여자를 좋아해도 된다. 그 결과만 자기가 감당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 분명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법적으로 우리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서로를 구분짓고 서열화한다. 그 서열에 따라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은연 중에 결정된다. 그리고 그 선을 넘어서는 사람에겐 사회적 비난이 가해진다.


어디 나보다 연봉도 낮은 게 외제차를 몰아?
어디 나보다 못 생기고 나이도 많은 게 저렇게 예쁜 옷을 입고 다녀?
어디 여자한테 별로 인기도 없을 것 같은 게 연애 프로에 나와?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열패감이 자라난다.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막상 내뜻대로 해도 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 화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 화를 더욱 돋구는 건 모든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회 분위기다. 물론 이런 사회 분위기가 잘못된 건 아니다. 세상을 바꾸긴 어렵지만 나 자신을 바꾸긴 쉽다. 그러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나 자신으로부터 문제를 찾는 게 낫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려 버리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타고난 재능, 부모님의 지원, 유능한 스승 등 우리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 인생은 운빨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 모든 요소들을 "누칼협?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라는 한 마디로 퉁쳐버린다. 직장에서 임금 체불이나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해도 "누칼협? 누가 그런 좆소기업에 들어가라고 칼 들고 협박했어? 그러게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 들어가지 그랬어?"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을 당했다고 해도 "누칼협? 누가 그런 남자 만나라고 칼 들고 협박했어? 네가 좋다고 만난 거잖아?"해버린다. 신분 사회에서는 애초에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의 실패는 내 탓이 아니었다. 미천한 신분을 탓하며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내 탓이다. 막상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는데. 인생은 운빨좆망겜인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진데.


요즘 사람들의 화는 거기서 오는 것 같다. 40대 여자가 몸매를 훤히 드러내는 옷을 입고 제로투를 춘다고 해서 꼭 "딱 봐도 40대 아줌마 같은데 집에 가서 애나 보세요."하고 악플을 달아야 하나? [나는 솔로]에 좀 어리숙한 출연자가 나왔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서 오은영 박사님을 먼저 만나보라느니 어쩌니 비아냥거려야 하나? 회사 장기자랑 시간에 무대에 올라온 직원이 별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꼭 블라인드에 저격글을 싸갈겨야 하나? 그냥 "별 재밌는 사람들도 다 있네."하고 넘어가면 덧나나?


덧나지. 짜증나잖아.
나도 저런 옷 입고 제로투 추고 싶은데 못추니까.
나도 방송 나가보고 싶은데 못나가니까.
나도 무대에 올라서 노래 불러보고 싶은데 못하니까.
근데 니들은 하잖아. 그러니까 짜증이 안 날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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