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많은 여자들은 허세 부리는 남자가 싫다고 말한다. SNS에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걸러야 할 남자 혹은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 유형에는 허세 부리는 남자가 꼭 들어간다.
그런데 실제로는 허세를 부리는 남자가 여자를 더 잘 만나는 걸 훨씬 많이 본다. 명품을 입을 능력이 안 되면서 입는 남자, 외제차를 몰 능력이 안 되면서 모는 남자, 아는 게 없으면서 아는 척하는 남자, 돈도 없고 비전도 없으면서 있는 척 하는 사짜들이 SPA브랜드 입고 다니는 남자나 국산차 모는 남자, 별로 가진 게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남자들보다 여자를 훨씬 잘 만난다. 왜일까?
남녀 관계에서 남자는 구직자, 여자는 기업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구직자는 분명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기업은 그 기업에서 일을 할 직원을 필요로 하고, 구직자는 자기에게 돈을 줄 회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면접을 볼 때 기업이 갑이고 구직자는 을이다. 기업은 그 구직자가 어떤 능력을 가졌고, 과거에 어떤 성취를 이루었고, 성격의 장단점은 어떤 게 있는지 물어보지만 구직자는 이 회사가 연봉을 얼마 주고, 야근은 얼마나 시키고, 복지 제도는 뭐가 있는지 물어보지 못한다. 면접은 기업이 구직자를 검증하고 평가하는 자리이지 구직자가 기업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다. 구직자가 그 기업에 입사하고 싶을 거라는 건 당연한 전제로 깔고 접근한다.
기업과 구직자의 관계에서 기업이 더 많은 걸 투자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직원에게 월급을 준다. 컴퓨터와 책상, 사무용품도 지급해야 하고, 직원이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 동안 실수를 할 것도 감수해야 한다. 혹여라도 그 직원이 금방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업무에 공백이 생기고 남은 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직원은 투자할 게 없다. 돈을 받고, 사무용품을 지급받는 입장이다. 정규직이라면 특별히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해고도 당하지 않는다. 인사고과가 나쁘면 성과급을 못 받거나 진급을 못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기본급은 받는다. 그래서 구직자들은 회사가 구직자들을 평가하는 것만큼 엄격하게 회사를 평가하지 않는다. 마구마구 지원하고 하나 얻어걸리길 기다린다. 정말 못 다닐 회사가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버틴다.
남녀 관계도 비슷하다. 남자는 번식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잃을 게 없다. 어차피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몫이다. 그래서 남자는 다다익선 전략을 취한다. 소개팅, 헌팅, 동호회, 회사, 학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자에게 접근하고, 그중에 하나 얻어걸리길 기다린다.
한편 여자는 잃을 게 많다. 너무 쉽게 자기 몸을 허락했다가는 책임감도 능력도 없는 남자에게 소중한 번식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러 남자들 중 가장 나은 남자를 신중하게 골라내야 한다. 남녀가 섹스만 하고 사귀지 않거나 금방 헤어진 경우 여자는 먹버(먹고 버린다는 뜻)당한 게 되지만 남자는 승자가 되는 것도, 부모들이 아들보다 딸에게 통금 시간이나 외박, 이성친구와의 여행, 술자리 등을 훨씬 엄격하게 규제하는 이유도 다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트는 남자가 여자를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다. 검증은 남자만 받으면 되고, 여자는 검증받을 게 없다. 그래서 남자는 돈과 정성, 달콤한 말을 통해 자신의 헌신성과 유능함을 보여주려 하지만 여자는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는다. 마치 구직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얼마나 적절한 대답을 하는지 평가하는 면접관처럼.
여자들은 허세를 부리는 남자가 싫다고 하지만 결국 허세를 부리는 남자가 여자를 잘 만나는 건 그래서다. 기업들은 자기의 스펙과 경력을 부풀리는 지원자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나는 역량도 없고, 제대로 된 경력도 없고, 사회성도 떨어진다고 솔직히 말하는 지원자를 뽑아주겠다는 뜻일까? 아니다. 실제로 능력이 있고, 그걸 겉으로 드러낼 줄도 아는 지원자를 뽑겠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일단 면접에서는 부풀리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 부풀려진 경력과 역량이 진짜인지 검증받을 기회라도 얻을 수 있고, 면접관을 성공적으로 속인다면 합격할 수도 있다. 성공률은 얼마나 포장을 잘했는지, 얼마나 심하게 부풀렸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0%는 아니다. 하지만 해본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고 솔직히 말하면 0%다.
허세 부리는 남자가 싫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허세 부리는 남자가 유해한 건 맞다. 직원을 일단 뽑고 나면 설령 그 직원이 경력과 역량을 부풀렸더라도 회사로서는 그 직원을 뽑은 비용을 감내해야 하듯, 일단 남자의 달콤한 말과 허세에 속아 연애를 시작하면, 특히 섹스를 하고 나면 여자로서는 헤어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여자는 선별해야 하는데 허세를 부리는 남자들은 그 선별 시스템을 교란시킨다. 그래서 여자는 허세 부리는 남자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남자의 입장은 다르다. 가진 것 없고, 남성적이지 않고, 별로 잘나가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0%지만 있는 척, 남자다운 척, 잘나가는 척이라도 하면 적어도 확률이 생기긴 한다. 물론 진짜로 가진 남자, 남자다운 남자, 잘나가는 남자가 되는 게 최선이겠지만 그건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평생 동안 못 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겉모습이라도 그럴싸하게 꾸미는 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