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4기 정수의 집에 가고 싶은 순간

기권

by 김선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순은 데이트권을 포기했다. 다른 사람을 택하겠다고 한 게 아니었다. 누구와도 데이트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슈퍼데이트권(제작진이 데이트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데이트. 다른 일반적인 데이트는 출연자들이 부담한다.)을 땄는데도 그냥 버리겠다고 했다.



그날은 촬영 기간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 내가 상대방에게 100만큼의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상대방도 꼭 나에게 100의 감정을 똑같이 갖고 있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 알아버렸다. 그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도 아니다. 원래 잘 안 되는 거다. 되는 게 기적이고 안 되는 게 정상이다.


그래도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길 바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만큼 인기 많다고, 이 남자가 나한테 껌뻑 죽는다고 자랑을 해도 좋고, 심심할 때 적당히 불러내서 데리고 놀아도 좋다. 어차피 다 내가 감당하기로 한 일이니 네가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굳이 내가 준 마음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그냥 10이라도 좋고 20이라도 좋으니 나의 마음이 너를 조금이나마 웃게 해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날 있었던 일도 마찬가지다. 정순이 꼭 나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이성적 호감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노력으로도 그 마음을 돌리기 어려울 거라는 것도 알았다. 내가 이곳을 빈손으로 나가게 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니었으면 했다. 슈퍼데이트권이니까, 어차피 제작진이 돈 낼 거니까 비싼 거라도 먹고 들어왔으면 했다. 최종 선택은 안해도 되니까 나중에 방송에 나갈 걸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시간이라도 떼워줬으면 했다. 그래도 너 좋다는 애 하나 있으니까 그렇게라도 써먹었으면 했다.


이 꿈 같은 시간에서 저에게 의미가 되어주었던 한 사람에게 제일 감사합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유독 힘들었을 그 사람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최종 선택 당시 했던 말


그래서 힘들었다. 나는 사랑을 하러 왔다. 항상 사랑 앞에 비겁했기 때문에 이번만은 비겁하지 않아보고 싶어서 왔다. 하지만 여기서도 도망만 다녔다. 내 마음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고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 망신당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너는 한심하다고 하지 않았다. 마음이 섬세한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조금은 너에게 힘이 될 수 있길 바랐다. 직장에 5일씩이나 휴가를 내고, 6주 동안 시청자들에게 온갖 악플 세례를 받을 걸 감수해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1등은 못해도 완주는 했으면 했다. 내가 이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생각한 만큼 너도 그랬으면 했다. 그 정도의 의미는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포기했다. 그날 밤 인터뷰에서 제작진이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도 정순을 택할 거냐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제작진은 다른 사람을 알아볼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그것도 싫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냥 적당히 시간 죽이다가 나갈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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