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정순을 찾아갔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어제 내가 당신을 택한 것에 대해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나는 괜찮으니 다른 사람 만나도 좋다고 했다. 그러자 정순은 아니라고 했다. 어제 즐거웠고, 다음번에 기회가 있다면 나를 택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어우, 마음이... 꺄아! 섬세하시네요.” 하는데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한 뭉클함이 밀려왔다. 이성을 붙들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감당할 수 없이 강렬한 감정의 파도에 내 멘탈은 순식간에 휩쓸려가 버렸다.
훗날 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순진하고 착해보이긴 하는데 너무 멘탈이 약한 것 같다. 여자는 약해보이는 남자, 눈물이 많은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다. 모태솔로 같다. 등등의 말을 했다.
그런데, 나도 안다. 사랑은 감정이고 감정은 본능이다. 그러니까 남자답게 굴어야 한다. 지배적이고, 경쟁적이며, 호전적으로 보여야 한다. 평생 동안 여자에게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다 내가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던 얘기다. 실제로도 나는 그렇게 눈물이 많은 남자가 아니다. 어른 돼서 딱 두 번 울었다. 22살 때 군대에서 한 번 울었고, 29살 때 강남역 11번 출구 베스킨라빈스에서 또 한 번 울었다. 세 번째 눈물을 전 국민이 보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흘리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그날 나를 울린 건 정순이 아니었다. 정자도 물론 아니었다. 그 밖에 다른 출연자도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나는 사랑을 원했다. 하지만 정작 사랑 앞에 늘 솔직하지 못했다. 상처받지 않고 자존심 상하지 않으려고 잔머리만 굴렸다. 그런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어차피 세상에 사랑이란 없다느니, 서로의 이기심이 있을 뿐이라느니 하는 그럴싸한 궤변을 늘어놓고 다녔다. 한 번쯤은 그 벽을 넘어보고 싶었다. 악플을 받아도 좋고 망신을 당해도 좋으니 한 번이라도 내 감정에 솔직해보고 싶었다. 커플이 될지 말지 인스타 팔로워가 얼마나 늘지 따위는 그것에 비하면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또 비겁한 선택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지지 못했다. 내가 정순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정순에게 폭탄을 떠넘겼다. 나는 모르겠으니, 네가 결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모르는 척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순은 어제 너무 재밌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분명 별 것 아닌 말이었다. 그냥 예의상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는 한심한 인간도, 비겁한 인간도 아니라고, 단지 마음이 너무 섬세한 것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그 한 마디는 어젯밤 뜬 눈으로 밤을 새며 했던 고민들과 지난 수십 년간 쌓여왔던 부정적인 감정들, 그리고 그로 인해 파여버린 마음의 골 속에 절묘하게 흘러들었다. 그리고 흘러서 넘쳤다. 걷잡을 수 없이.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이제 헤매지 않겠다고. 시간, 돈, 선택의 기회, 체력과 감정, 그리고 염치와 체면까지. 이곳에 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이 사람에게 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