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4기 정수의 잠 못드는 밤

혼돈

by 김선비
언제까지 그렇게 재실 거에요? 사람은 가슴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같은 기수에 출연했던 707 베이비 영철이 했던 말이다. 마음에 두고 있던 정자(당시 28세, 치위생사)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격분해서 이런 말을 했다.


이 한마디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나는 솔로 4기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출연자들, 더 나아가 연애 예능이라는 장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솔로지옥에 출연했던 200만 유튜버 프리지아도, 하트시그널의 김현우도, 그밖에 숱한 미남 미녀들과 부자들, 인플루언서들도 감히 그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게 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이라는 건 자동차에 탑재된 후방 센서와 비슷한 것 같다. 후방 주차를 할 때 주위에 충돌 위험이 있는 물체가 감지되면 센서가 경고음을 낸다. 그러면 운전자는 그 물체를 피해서 주차할 수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해주는 행위를 할 때는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우리를 위협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는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자손을 이어나가려면 매력적인 상대와 짝짓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섹시한 이성을 만나면 성적인 흥분을 느낀다.


그러니까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건 대체로 유용하다.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가까이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멀리 하면 우리는 생존과 번식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충돌할 때다. 길을 걷다 섹시한 여자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약을 먹이거나 납치를 해서라도 그녀와 섹스를 한다면 내 종족 번식의 욕구는 충족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원치 않는 상대방과의 성적 접촉으로 인해 공포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장애나 외상, 기형으로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마주쳤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사람과 성적인 결합을 해서 자손을 남기게 된다면 그 아이의 생존율은 극히 낮을 것이다. 즉, 종족 번식의 욕구를 충족시킬 확률이 감소하게 된다. 우리의 본능은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형아나 장애인을 보면 불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우리의 불쾌감을 마음껏 표출해선 안된다. 그러면 그들이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이 소중하듯, 그들의 감정 역시 소중하다.


그러니까 머리가 좋아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서 이리 저리 흔들리기보다 그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연유한 것인지를 간파해내야 한다. 타인의 감정과 내 감정을 동일선상에 놓고 객관적,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내 감정에만 솔직하겠다는 건 그냥 지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순간의 강렬한 감정은 상황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우리의 이성을 너무나 쉽게 마비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혼란스러워한다.


그날 밤 내가 그랬다. 정순이는 오늘 데이트에 불만족했다. 1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고, 비용은 더치페이를 했다. 그리고 다른 출연자들이 모두 숙소에 모여 뒷풀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혼자 참석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 나는 정순이 내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 아마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그걸 뒤집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사람과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긴 하다. 그런데 정말인가? 내가 원하는 게 정말로 이 사람인가? 혹시 욕을 먹기 싫어서 이 사람을 택하려는 건 아닌가? 이미 정자에서 정순으로 한 번 방향을 튼 전적이 있고, 이제 와서 다른 여자를 택한들 잘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계속 정순을 택해서 순정남 이미지라도 가져가려고 하는 건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지금이라도 다른 여자를 택해야 하나? 그런데 그건 떳떳한 행동인가? 정순과 잘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아직 아무와도 연결되지 않은 다른 여자를 택하는 건 또 한 사람을 속이는 일이지 않나?


그런데, 내가 정순에게 확실히 거절을 당하긴 한 건가? 그냥 피곤해서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 한 것뿐인데 내가 너무 확대해석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정말 피곤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왜 난 벌써부터 포기할 생각만 하고 있지? 이번에는 좀 변하고 싶어서, 한 번이라도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떳떳해보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것 아니었나? 그런데 나는 이 순간에도, 여기까지 와서도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는 건가?


결론은 나지 않은 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도 모르겠는 밤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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