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비 Mar 22. 2023

왜 학원물 웹툰에는 일진과 찐따만 나오는가

요즘 <약한 영웅>이라는 웹툰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내용은 평범한 학원물인데 설정이 조금 독특하다. 제목 그대로 약한 영웅이다. 160cm 정도의 키에 50kg도 안 나가는 주인공이 심리전과 지형지물, 급소를 노리는 한 방으로 자기 몸의 두 배는 되는 일진들을 때려 눕히는 내용이다. 최근 화에서는 최종 빌런과의 전면 승부를 앞두고 있는데, 전개가 너무 지지부진해서 평점 테러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쿠키를 구워서 보고 있다. 일요일을 기다려지게 하는 재미있는 웹툰이다.


그런데 문득 웹툰을 보다 궁금한 게 생겼다. 왜 학원물 웹툰에 남학생들은 일진 아니면 찐따만 나오는 걸까? 물론 학교에는 일진도 있고 찐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다. 대부분은 일진도 아니고 찐따도 아닌 보통 학생들이다. 쉬는 시간에는 옆자리 친구 숙제를 배끼고, 점심 시간에는 축구를 하고, 하교하고 나서는 학원에 가고, 가끔씩은 땡땡이치고 피시방에 가기도 하는 보통 학생들이다. 그런데 이런 보통 학생들의 이야기는 웹툰에서 다루지 않는다. 웹툰 속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어울려 노는 곳이 아니라 정글이다. 선생님, 심지어는 공권력의 손도 닿지 않는 무법지대다.


여학생들은 다르다. 여학생들만이 갖고 있는 섬세한 감성, 그들만의 친구 관계, 짝사랑, 혹은 여고에서만 일어나는 병맛스러운 에피소드들을 다룬 영화나 웹툰들이 많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평범한 남학생들은 A학교 짱과 B학교 짱 중 누가 더 센지 해설해주는 역할이거나, 왕따가 일진한테 얻어터질 때 옆에서 방관하고 있는 역할 둘 중 하나다.


물론 그게 재미있어서 그런 것일 게다. 여학생은 설정상 엄청난 미인이 아니더라도 그림체를 예쁘게 그릴 수 있다. 아니면 '유미의 세포들'처럼 귀엽게라도 그릴 수 있다. 그림체가 예쁘니 보는 맛이 난다. 하지만 남학생들은 존잘 알파남 컨셉이 아니라면 잘생기고 키 크고 몸 좋게 그릴 수가 없다. 귀두컷에 안경을 쓰고 여드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주인공이 나오는 웹툰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한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가고 리스크를 감수하려드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나도 영업과 마케팅을 하고 있어서 잘 안다. 안 팔릴 물건을 파는 건 가장 무능한 마케터가 하는 짓이다. 작가 개인의 창작의 자유와 독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는 건 너무나 구질구질한 짓이다.


그래도 좀 아쉽다. 학창시절에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1학년 체육대회 때 계주 4번 타자로 나와서 대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을 때 얼마나 짜릿했는데. OMR카드를 밀려써서 처음으로 반에서 10등 밖으로 밀려났을 때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중학생 때 좋아했던 친구에게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말을 건낼 때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했는데.

이전 11화 인터넷 메뚜기 떼의 창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