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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Apr 29. 2023

연애에서는 여자가 갑 맞다.

인정할 건 합시다.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렇다. 사회적으로는 남자가 강자 맞다.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큰 꿈을 갖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성공지향적 가치관을 주입받는다. 이러한 가치관들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기성 세대에는 여전히 남성들이 상류층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딱히 젊은 남성들을 이끌어주는 건 아니다. 세상은 냉혹하다. 회사건 정당이건 기타 어떤 종류의 조직이건 실력있는 사람을 원한다. 남자라고 끌어주고, 여자라고 버리진 않는다. 하지만 어쨌거나 남자들은 그들을 롤모델로 삼을 수는 있다. 이건 분명한 이점이다.


하지만 남녀 관계에서는 여자가 갑이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속담처럼, 연애에서는 아쉬운 쪽이 을이고, 덜 아쉬운 쪽이 갑이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게 만들어졌다. 여자가 남자를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강렬하게 남자는 여자를 갈망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돈도 더 많이 써야 하고,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여자가 변덕을 부리고 까탈스럽게 굴어도 다 맞춰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잘 벌어야 한다. 여자라서 교육을 못 받는 시대도, 여자라서 월급을 덜 주는 시대도 아니지만 남자는 여전히 여자보다는 돈을 더 벌어야 한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남자에게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말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반론은 결국 모든 건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남자 중에서도 더 잘난 남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남자가 있다. 잘난 남자들은 얼마든지 여자를 잘 만나고 다닌다. 결국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여자가 연애 시장에서 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못난 남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 것들을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린 시절 생활고로 인해 공병을 주우러 다니던 흙수저였는데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건 모두 개인의 능력 문제인가? 콩고 출신의 조나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국 사회에 흑인이나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나? 원래 100% 다 맞는 사회 현상이란 없다. 예외란 늘 있다. 그러니 80%가 맞으면 맞다고 보는 거다. 그리고 80%의 경우, 남자는 여자보다 아쉬운 입장 맞다.


하지만 이 뻔한 논리를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말 80%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애는 1대1의 관계다. 소개팅을 해도, 데이트를 해도, 연애를 시작해도 다 1대1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연애는 알지만 남의 연애는 모른다. 세상에는 남녀의 임금 격차가 얼마인지, 대기업 임원 중에 남자가 몇 %인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몇 명한테 고백을 받아봤는지, 몇 번 차여봤는지, 하루에 연락 오는 이성이 몇 명 정도 되는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나는 솔로 프로그램은 이런 점에서 좋은 교보재가 되는 것 같다. 남들이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6명의 남자와 6명의 여자라는 표본을 통하여 이 사회의 대세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 연애에서는 여자가 갑 맞다. 여자 출연자들은 자기가 0표를 받았나, 호감을 갖고 있는 남자가 자기를 선택해주지 않을 때 충격을 받는다. 눈물을 보이는 정도는 매우 흔한 반응이며, 때로는 남자에게 왜 자기를 택하지 않냐며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에 대해 시청자나 MC들이 딱히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자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구는 남자를 탓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남자 중에서는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이 707 베이비 영철 외에는 없다. 여자가 남자에게 거절당하는 것보다, 남자가 거절당한 경우가 훨씬 많지만 그들은 다들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1기에 출연했던 성악가 영호가 무용 강사인 정숙에게 거절당하고 숙소에서 괴성을 지르며 오열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여자 앞에서 한 행동은 아니다. 당시 시청자들은 그가 오은영 쌤에게 상담을 받아야 한다, 정서가 불안정해보인다, 저런 남자들이 나중에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게 된다고 했지만 막상 그는 정숙에게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았다. 여자 앞에서 왜 나를 택해주지 않느냐, 나는 너에게 모든 걸 줬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며 따지는 건 정말 못 배운 남자들이나 하는 행동인 것이다.

출처: 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출처: 유튜브 SBS 플러스


같은 상황에서 남자 출연자들과 여자 출연자들의 반응이 다른 이유는, 남자들에게는 이 상황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많이 거절당해봤으니까 거절당해도 별로 충격을 안 받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거나, 다른 남자와 저울질하는 건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인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인격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이 정도 회사에서 이 정도나마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게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듯,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여자고, 그가 그렇게 못난 남자라서 당신에게 그 남자가 당신 앞에서 빌빌대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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