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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n 19. 2023

34.8보다 높은 13.4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답정너 언론들

https://url.kr/txmz6u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공개한 국제 자살 통계(2020년 기준)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1명이다. 이는 2위인 리투아니아(20.3명)와 3위 슬로베니아(15.7)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또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12위다. 한국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는 레소토, 가이아나,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란드), 키리바시, 미크로네시아연방, 수리남,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다. 특히 여성 자살률은 훨씬 심각하다. 여성 자살률은 13.4명으로 세계 4위다.

- 위 기사에서 발췌


기사를 읽는데 순간 '뭐지?' 싶었다. 한국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24.1명인데, 여성 자살률은 훨씬 심각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 자살률은 당연히 10만명 당 24.1명보다는 높을 것이다. 그런데 13.4명이란다. 무슨 뜻이지? 어떻게 24.1명보다 13.4명이 훨씬 심각할 수 있지?


다시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남녀 통합 자살률은 12위인데, 여성 자살률은 4위니까 여성 자살률이 더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가히 악질적이다. 남성과 여성의 자살률 평균이 24.1인데 여성의 자살률이 평균을 밑도는 13.4라는 건 남성의 자살률은 평균인 24.1보다도 한참 높다는 뜻이다.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1 대 1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34.8이 나온다. 여성의 2.5배가 넘는 수준이다. 심지어 이 높은 수치로도 겨우 세계 12위에 불과하다. 남자들이 여성의 상대적으로 낮은 자살률을 멱살잡고 캐리했지만 겨우 12위 밖에 못했다. 그 말은 다른 나라의 남성 자살률은 한국 남자들의 34.8보다도 더 높다는 뜻이다. 34.8 정도는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남성 자살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기사에서는 여성 자살률이 훨씬 심각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게 올림픽인가? 100m달리기에서 남자 선수가 여자 세계 신기록보다 훨씬 빠른 기록을 내도 같은 남자 선수들 사이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금메달을 받을 수 없듯, 남자가 여자보다 2.5배 더 많이 죽어도 여자들 중에서는 한국 여자가 4번째로 많이 죽었으니 여성 자살률이 더 심각하다는 말인가?


상식적이지 않은, 누구라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 저런 식의 문장을 쓴 이유는 자명하다. 일부러 이해하지 못하게 쓴 것이다. 굳이 한 번 더 읽어보지 말라고, 그냥 여성 자살률이 심각한 줄로 알고 대충 넘어가라고 저렇게 쓴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왜 34.8명의 죽음보다 13.4명의 죽음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 굳이 따져보지 않고 그냥 여성 자살률이 심각하구나, 역시 여성은 남성에게 지배당하고 수탈당하기만 하는 사회적 약자구나, 했을 것이다. 빌딩 옥상에 올라가 하얀 맨발을 난간에 올려 놓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얼마나 가련하고 애잔한가!


혹자는 나를 쪼잔하다 할 것이다. 남자가 되어가지고 순결하고 연약한 여자의 죽음에 함께 아파해주지도 않는다며 비난할 것이다. 동의한다. 나도 이런 걸 따지고 있는 내가 싫다. 여성이 13.4명 죽건 남성이 34.8명 죽건 무엇이 중요한가. 그냥 자살률이 그 정도로 높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냥 남성도, 여성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사회를 만들면 되는 거지.


하지만 타인의 죽음을 먼저 폄하한 건 저들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을 입맛에 맞게 재조립했다. 그 과정에서 34.8이라는 남성의 높은 자살률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여성의 자살률은 훨씬 심각하다는 모호한 문장 속에 묻혀버렸다. 졸지에 남성은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 손에 쥐고 여성을 괴롭히는 악의 축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식의 기사는 다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문제에 더 이상 열 올리고 싶지 않다. 나는 장가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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