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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Sep 01. 2023

자식 교육 잘 시킨 어느 애엄마 이야기

신사임당에 대해 할 얘기가 그것밖에 없나?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오전에는 오죽헌에 들렀다. 한여름 더위가 조금은 사그라든 날씨였지만 여전히 햇빛은 쨍했다. 한옥 문간에 앉아 쉬다가, 부채질도 하다가, 마침 기념관이 보여서 에어컨 바람도 쐴 겸 들어갔다.

1324년 21세, 첫째 아들 이선을 낳았다.
1329년 26세, 맏딸 매창을 낳았다.
1336년 33세, 셋째 아들 이이를 낳았다. 
1342년 39세, 넷째 아들 이우를 낳았다. 우는 어머니 사임당을 닮아서 시·서·화에 뛰어났다.
1350년 47세, 남편 이원수공이 세곡을 실어 나르는 수운에 관련된 업무를 맡은 수운판관이 되었다.

신사임당이 직접 그렸다는 초충도며, 쓴 글, 수놓은 자수 같은 것들을 보며 걷다가 벽에 붙어있는 연보가 문득 눈에 띄었는데, 실소가 났다. 신사임당의 삶을 이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걸까? 신사임당이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한 마디로밖에는 표현될 수 있는 인물인가? 어머니의 역할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신비로운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철학 사상이라 해도, 강대한 제국이나 대기업이라고 해도 생명 그 자체의 가치에는 비할 수 없다. 어머니는 그토록 고귀하고 신비로운 생명을 낳고 길러내는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충분히 훌륭하고 고귀하다.


하지만 신사임당은 그 이상을 이루어낸 사람이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로서가 아니라 예술가, 문필가, 논객으로서도 훌륭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팔자가 사납다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도 않았던 시대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눈부신 성취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그냥 율곡 이이네 엄마라는 한 마디로 퉁쳐버렸다. 그것도 신사임당을 기린다는 이 기념관에서 말이다.


백원짜리 동전에 이순신 장군, 천원 짜리 지폐에 퇴계 이황, 5천원 지폐에 율곡 이이, 1만원 지폐에 세종대왕. 구권 지폐에는 모두 남자 인물들이 실려있지만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5만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실렸다. 현대 사회에서 신사임당의 삶이 이렇게 재조명받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저 율곡 이이라는 대학자를 낳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삶을 통해 현대의 여성들이 배울 점이 겨우 그것밖에는 없는 걸까?


참 구리다. 그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건 왜 안 고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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