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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r 18. 2023

인터넷 메뚜기 떼의 창궐

06년생 틱톡 영상을 본 35살 아저씨

유튜브를 보는데 외로운 06년생 어쩌구 하는 쇼츠 영상이 알고리즘에 떴다. 클릭을 해보니 여고생 둘이 짧은 교복치마를 입고 교실 뒤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댓글창을 눌러보았다. 보기 힘들 정도의 악플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미래의 룸나무(룸살롱 꿈나무)들이라느니, (노래방 도우미가 되어서) 노래방에서 만나자느니, 자기도 06년생인데 이런 애들이 있어서 수능은 걱정 없겠다느니, 하는 댓글들이었다.


댓글 단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아니었다. 민망할 정도로 짧은 치마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까지, 풋풋하고 건전해 보이는 여고생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풋풋하고 건전한 여고생이라면 애초에 교실 뒷편에서 틱톡 댄스 영상을 찍어서 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욕을 먹을 일인가? 나도 학창 시절을 보내봤다. 그 때도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은 있었다. 한 학급이 40명이라면 서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들을 따라다니 애매한 아이들까지  예닐곱 명 정도 되었을 것이다. 수학 여행 버스 맨 뒷줄, 그리고 그 바로 앞줄에 앉는 아이들이다. 그땐 그들이 무서웠다. 박태준 만화에 나오는 일진들처럼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이 평범한 아이들 서너 명은 순식간에 두들겨 팰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들도 보통 아이들이었다. 욕을 좀 하고 교복을 좀 줄여입고 머리에 왁스를 좀 바르고 다녔다 뿐이지 막상 '학폭'이라 할 만한 일들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틱톡 영상을 찍은 그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반에서 5등 안에 들고, 준비물이나 숙제, 수행평가를 꼬박꼬박 챙기는 아이들은 아닐 것이다. 부모님 속을 좀 썩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그들을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룸살롱 꿈나무니 미래의 노래방 도우미니, 학폭 가해자니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못된 건가?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춤추는 영상을 틱톡에 올린 여고생과,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한테 룸빵녀, 노래방 도우미 운운하는 사람들, 둘 중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건 누구인가?


이 글을 쓰려고 다시 영상을 찾아보려 했는데 검색이 되지 않았다. 악플들을 보고 상처받아서 내린 것 같다. 군대 갔다왔고, 사회 생활 몇 년 해본 삼십대 중반 아저씨도 (나는 솔로 출연했을 당시) SNS에 악플 몇 개만 달리면 멘탈이 려서 다음 날 회사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 여고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렇지만 그 댓글을 단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자기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게 아니라 정의를 구현한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온라인 세상을 떠돌 것이다. 마치 메뚜기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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