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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an 24. 2023

신(新) 마케이누가 온다.

한남과 한녀의 평행이론

 일본에는 마케이누 세대라는 게 있다고 한다. 싸움에 진 개라는 뜻으로, 노처녀들을 비하하는 단어다. 일본에서 노처녀들이 늘어나게 된 데에는 페미니즘의 약진이 한 몫을 했다. 예로부터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담당했다. 남자에게는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성공하는 게, 여자에게는 아내와 어머니로서 가족들을 돌보는 게 의미있는 삶으로 여겨졌다.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문제를 제기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집안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가두어두고 자기들끼리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여자는 사회생활보다는 집안일을 하는 게 어울린다는 편견을 만들어낸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많은 전도유망한 여성들이 사회 생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원했던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녀들이 무능해서는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유리천장 때문도 아니다. 원래 성공이란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고 대다수는 실패한다. 역성혁명에 성공하면 왕이 되지만 실패하면 역적이 되어 구족을 멸하고, 사업에 성공하면 재벌 그룹 오너가 되지만 실패하면 파산해서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성공을 위해 모든 걸 건다. 야근, 주말근무, 접대, 밤샘 회식, 상사로부터의 모욕, 정치싸움, 그 모든 걸 견뎌낸다. 그런데 여자들은 그걸 몰랐다. 남자들이 쉽게 성공하는 줄 알았다. 기회만 주어지면 자기들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녀들은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의 대다수가 남자라는 사실을 부러워했을 뿐, 노숙자, 자살자, 수감자, 산업재해 사망자의 대다수가 남자라는 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들이 원래 누리고 있었던 연애 시장에서의 지위마저 잃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다. 그래서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래서 여자는 다가오는 남자들을 선별하는 입장이 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돈을 쓰고, 매너있고 남자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게 여자의 권력이다. 그런데 그 권력은 여자의 미모와 젊음에 비례한다. 젊고 예쁜 여자에겐 돈 많고 매력있고 권력있는 남자들이 모여들지만 나이가 들고 군살이 붙고 피부가 탄력을 잃으면 다가오는 남자의 양과 질이 줄어든다. 선택권이 줄어드니 예전처럼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여자도 먼저 다가가고 돈을 쓰고 남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물론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로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건 좋은 애인과 남편을 만나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자들은 여자의 직업이나 재력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들은 가치있는 걸 버리고 가치없는 걸 얻었다. 새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남자들이 그 전철을 밟아가는 것 같다. 설거지론, 베트남론, 레드필, 알파메일, 픽업 아티스트.. 요즘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다. 이런 개념들은 모두 연애 시장에서 여자가 누리는 권력에 대한 부러움으로부터 출발한다. 평범한 남자들은 연애 시장에서 숱한 거절을 당한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여자들에 대한 반감이 싹튼다. 대단히 예쁘거나 쭉쭉빵빵하거나 매력이 있는 여자도 아니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을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는데 불만을 가진다. 그래서 알파메일을 동경한다. 여자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가장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들조차도 얼어붙게 만드는 하트시그널의 김현우나 솔로지옥2의 김진영(유튜브 예능 가짜 사나이에 덱스 교관으로 출연했다.)처럼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레드필 이론을 통해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여성의 본성을 이해하고, 픽업 아티스트 지식을 익히면서 이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 양식을 학습한다.


 하지만 그들은 머지 않아 알게 될 것이다. 알파 메일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솔로지옥2에서 남자 출연자 김진영이 여자 출연자들의 캐리어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나도 캐리어를 안 들어주면 그처럼 되는 게 아니다. 그 안에 기세가 녹아들어있어야 한다. 여자에게 숙이고 들어가지 않고도 다른 매력적인 남자들을 제치고 여자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깃들어있어야 한다. 그건 한 순간에 되는 게 아니다. 숱한 삶의 어려움들을 이겨내면서, 숱하게 많은 여자를 만나면서 평생에 걸쳐 만들어져온 것이다. 그걸 어설프게 따라하는 건 오히려 독이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해내는 여자들의 촉은 그렇게 어설프지 않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캐리어 들어주는 게 낫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 모아서 착실한 남편감이라도 되는 게 낫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걸 과소평가하고 갖지 못한 걸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남자에겐 사회 경제적 권력이, 여자에겐 성적 권력이 있다. 둘 중 무엇이 더 강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남자는 여자의 성적 권력을 부러워하고, 여자는 남자의 사회 경제적 권력을 부러워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연애 시장에서 가장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들보다도 강력한 권력을 누리는 알파 메일을 끊임없이 동경할 것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냥 아버지 세대가 했던 것처럼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돈 모아서 장가가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마치 여자들이 성공한 남자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를 부러워해서 커리어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막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마케이누들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결국 장사꾼들만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많은 작가, 정치인, 유튜버들이 페미 코인을 타고 떡상했듯이, 이번에는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조장해내는 갈등 장사꾼들만 팝콘 뜯으면서 이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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