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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Feb 23. 2023

이름을 말해선 안 되는 사상

내가 여혐이라고?

작년에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을 때 사람들이 내가 이상한 사람인줄 알았다고 한다. 다름아닌 카톡 프로필 때문이다. 첫 책인 [페미니스트들에게 던지는 치사하고 쪼잔한 질문들]을 출간하고 기념삼아 책 사진을 찍어서 프로필에 걸었는데 그 사진 때문에 내가 여혐종자, 일베충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한 팀장님은 너 연애하고 싶으면 이 프로필 당장 내려, 여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라는 조언도 했다.


요즘은 그런 세상인 것 같다. 찬성이건 반대건 페미니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 각오를 해야 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아, 저는 그런 거 잘 몰라요. 굳이 생각하거나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남자 여자 서로 잘 어울리면서 지내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하는 게 가장 모범적인 대답일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근 몇 년 간 대세는 페미니즘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은 여성을 억압하고 수탈하며 세상 좋은 것들을 다 누려온 절대악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또 몇 년 간은 안티 페미니즘이 대세였다. 페미니스트들의 비논리와 내로남불을 꼬집으며 그들은 떡상했다. 하지만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애초에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녀가 서로를 미워하게 될 수록 그들은 책을 더 팔고, 유튜브 조회수를 올리고, 표를 더 받을 수 있는데 남녀 갈등을 왜 해결하겠는가. 이런 갈등 장사꾼들에게 불쏘시개를 던져주지 않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다. 세상에는 분명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겪는 고통들이 있다. 고통의 크기를 견줄 순 없지만 그 고통은 분명 실재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다. 그만큼 더 절실하다. 그래서 남녀 관계에서는 남자가 을이고 여자가 갑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여자라고 마냥 편한 건 아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기 때문에 여자를 위해 명품백을 사주고, 대화를 이끌고, 매너있게 행동하지만 성욕이 강하기 때문에 고백 공격이나 스토킹,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정확히 같은 이유로 남녀는 고통받고, 서로를 부러워한다. 모든 것들이 그렇다. 퐁퐁남의 이면에는 경력단절이 있고, 임금격차 문제의 이면에는 남성의 높은 산재사망률과 자살율이 있다.


이건 분명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우리는 더 나은 균형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려면 대화를 해야 한다. 서로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털어놓고, 같이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하면 여혐종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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