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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경어터 Oct 12. 2019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도 추억이 된다

우리는 자신을 감동시킬 인생을 만들 의무가 있다

내 논문을 훔쳐간 도둑에게 감사를 고백하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집필한 장영희 작가는 미국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논문을 완성하였다. 행복한 귀국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 논문 최종본이 들어 있는 트렁크를 도둑맞았다. 초고들은 정리된 상태에서 당시 타자기로 논문을 쓰던 시절이라 최종본의 분실은 6년의 세월이 한순간 사라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도둑이 논문을 든 트렁크를 훔쳐 달아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한 이후로 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오늘쯤 올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웨스트브룩 박사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영희는 그대로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라고, 곧 올 거라고 얘기했었지. 넌 뭐든 극복하는 사람이니(You're a survivor.) 이제 경험이 많으니까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 거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논문 지도교수인 거버 박사는 다시 찾아온 제자를 두 팔을 벌려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의 말대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1년 만에 다시 논문을 완성하였다. 15년이 지나도 논문을 도둑맞은 경험은 여전히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내 완성한 논문에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논문 원고를 훔쳐 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라는 헌사를 적었다.     


암 판정 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지난 8월 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한 달 뒤 수술이 잡혔다. 나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한 달 동안 마감 예정이었던 원고를 정리하고, 잡혀있던 강연 스케줄들도 정리하였다.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면서 내 마음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뒤돌아보니 첫 번째 암수술을 하고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의사는 나에게 13년 동안 멀쩡한 것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주어진 한 달이라는 시간을 통해 13년 동안 기적처럼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았다.

20대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정부기관의 다양한 공모전과 행사에 참여하여 수상도 해보고, 정부기관 교육 전문강사가 되어 100여 개 이상의 도시 속 학교에서 강연하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종주도 하였고, 스카이다이빙에도 도전하였다. 만화작가를 시작으로 지금의 작가가 되기까지 후회 없이 펼친 활동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20대를 뒤돌아보며 지금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20대 열정 가득한 기성준이 30대가 된 나를 보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까...      


가진 것이 많아 두려운 것이 아닐까...     


21살에 암이 발견되었을 때는 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많이 우셨다고 한다. 내 앞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의사와 간호사 앞에서 우셨다고 전해 들었다. 엄마의 슬픔도 모른 채 환자복을 입고 뛰어다니던 철없던 시절이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도 강했다. 

수술을 마치고 대학생으로 돌아가서 한 달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50만 원이었다. 통장 잔고에는 100만 원도 없었지만, 100만 원이 모이면 기부를 한 경험이 많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기에 누군가를 돕는 삶으로 살고 싶었다. 자전거 종주나 스카이다이빙과 같은 도전들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은 활동들이었다.

13년이 지나 수술을 앞두고 두려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20대에 수술 소식은 엄마의 가슴만 철렁 내려앉게 했으면, 30대 수술 소식은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3년 전과 전혀 다른 나의 모습에 철이 들어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20대와 비교해 보니 가진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집필하고 작가가 되어 하루 시간 내서 강연을 한 번 하면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받는다. 20대 때 한 달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하루 만에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30대가 되어 결혼도 하고, 집과 차도 있고, 천만 원이 넘는 통장을 들고 있지만, 그때 그 시절만큼 남을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마음에 여유 말이다. 수술을 앞두고 혹시 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 생각이 두려움에 빠지게 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을 감동시킬 인생을 만들 의무가 있다     


세계 최고 경제학자인 워런 버핏은 “열정은 성공의 열쇠,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나를 존재하게끔 해준 사회 덕분이다.”라는 말을 하며 지속적으로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20대부터 시작한 독서모임을 통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부산지역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서 파티를 열어주고, 아동센터 아이들에게 독서지도, 보육시설 청소년들과 멘토링, 독거노인들에게 쌀 기부 등 독서모임 회원들과 다양한 대상자들을 만났다. 국내 저소득층 아이들과 세계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도 5군데 이상 세웠다.

수술을 앞두고 이런 활동을 해온 20대 기성준에게 부끄럽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일로써 생계를 유지하지만,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라는 말을 하였다. 처칠의 말을 돌아보면서 지금 나는 ‘생계를 유지하는 삶인가? 인생을 만들어가는 삶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삶은 생계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찾아온 사명에 응답하는 것이다. 자신을 감동시킬 인생을 만들 의무가 있다. 나에게 찾아오는 아픔들은 흔들리지 않는 인생으로 만들기 위한 선물이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감사로 응답할 수 있다. 감사를 통해 자신도 타인도 감동시킬 수 있다. 이것은 절대자 역시도 감동케 할 수 있다. 가장 감동적인 인생을 살아갈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된다.      

수술 전 아내와 함께 100만 원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생일을 맞이하여 아내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었다. 수술을 앞둔 상황이라 갖고 싶은 게 전혀 없었다. 갖고 싶은 것보다는 아내와 함께 기념적인 일을 하고 싶어 100만 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다. 20대에 근무하기도 했고, 꾸준히 봉사를 해왔던 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센터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들을 위해 100만 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전하고, 수술 전 소박한 전달식을 가졌다.     


“남을 위한 인생을 살 때, 가장 감동적인 인생이 되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 헬렌 켈러    

 

나에게 찾아온 가슴 철렁 내려앉는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것이라 의심이 없다. 그러기에 감사하다.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한 장영희 작가처럼 나 역시도 다시 시작하는 법을 알려준 암에게 감사하다고 남기고 싶다. 단순히 나만의 성공을 위해 쫓아가는 삶이 아닌 남을 위한 감동적인 인생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 덕분이다. 그 도움이 나를 존재하게 해 주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기적이 시작된다. 자신에게 감사하고, 남을 위한 인생을 살 때, 내 존재 자체가 기적이 될 것이다. 내가 어떠한 환경 속에서라도 감사하기 시작할 때 할 때 감동된 인생을 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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