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회사 유랑기-구내식당
직장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구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는지, 누구와 대화하는지에 따라 그 방향과 온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① "김씨네 아들은 M전자 다니는데 연봉이 몇천이라더라, 이씨네 딸은 B물산 다니는데 6시면 전부다 퇴근한다더라, 박씨네 손자는 C그룹 다니는데 근무시간이 자유롭다더라."
친척들을 만나 듣게 되는 남의 회사 이야기는 항상 파라다이스 같았다. 우리나라가 벌써 그렇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인지, 우리나라에 그렇게 근무여건이 훌륭한 회사들이 많은지 매번 놀라게 만들었다.
② "하... 오늘 보고서 만들어야 해서 야근각이다, 우리 부장 X이 맨날 일 미뤄대서 힘들다, 지난주에도 또 팀원 한 명 관두더라, 나도 당장 그만두고 해외로 떠나버리고 싶다."
그런데 친구들과의 단톡 방에서 듣게 되는 남의 회사 이야기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MBC의 새로운 프로그램, 구내식당 1화를 통해 전해 듣는 회사들의 이야기는 ①번 같았다.
마치 기업연수원에서나 들을 법한, 홍보팀을 통해서 전해 듣는 것 같은 회사의 복지/연혁 등, 알차지만 딱딱한 정보들.
(물론 김영철, 이상민 등 능력 있고! 잘 나가는! 예능인들을 통해 전반적인 방송의 분위기를 딱딱하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나가긴 했다.)
구내식당 1화를 보면서 느꼈던,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안에 '공영(公營)'의 성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人을 찾아라 등 MC들에게 주어진 미션이나, 구내식당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는 직원들, 이어지는 장면에서 다시 만나 회사를 소개하는 직원들 등 대부분의 장면들이 기업 홍보를 위한 연출처럼 느껴졌다.
(위의 ①번 대화처럼, 친척들에게 다른 기업 이야기를 듣게 되면 왠지 모르게 불편함이 느껴졌었는데, 그러한 불편함과 같은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을 방법으로) 회사를 홍보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은 유튜브나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다.
굳이 공영방송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아니 공영방송이 할 필요가 없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3화에 이르러서 구내식당은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회사가 아니라 사람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회사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진짜 직장인들의 '삶'을 담아내는데 집중했다.
30년을 한 회사에서 사명감을 갖고 매일같이 일해오신 직장님의 삶은 그 자체로 스토리였고,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가슴 뭉클해지는 따뜻함을 전했다. 공영방송으로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구내식당은 직장생활이라는 좋은 소재를 다룬 신생 프로그램이기에, 변화/발전의 가능성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②번 대화 속 회사생활 이야기가 듣기에는 생지옥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안에 직장인의 삶이 담겨있고, 같은 직장인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준다는 점에서,
구내식당이 회사보다는 사람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변해갔으면 한다.
(1회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들처럼,) 회사와 관련된 대외적인 정보들을 단순히 전달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각자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를 하나씩 읊으며 나열하는 것 보다는,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허심탄회한 진짜 이야기,
겉핥기 식으로 업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한사람을 진득하게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의 하루를 살펴보고, 직장인들의 사람사는 냄새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말이다.
물론, 방송이라는 특성상 직장인들의 속사정까지 100프로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한 모습을 담아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구내식당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며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프로그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