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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an 05. 2017

열매를 맺기까지

고통스럽고도 기쁜 부모가 된다

차가운 나뭇가지에 꽃 한 송이 필 때까지
줄곧 시간 안에 나를 가두어 두었다.
삶은 지극한 남루에 지나지 않아
잡히지 않는 물집만이 온 얼굴에 피어난 채.

간간이 들려오는 음성 하나에
머리를 받고, 
서러운 눈물 한 점 땅 위로 떨구니
눈물마다 새싹들이 흉터처럼 돋아났다.

겨울이 가득 찬 나무 안에서
일자로 누워있던 내게
햇살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다 준다.

데인 자리 곪지 말라고.
천한 흉터는 없는 것이라고.

눈부신 웃음 하나 가지 끝에 걸리고
작은 봄이 열매 하나를 툭 던져놓으니.
드디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고도, 가장 기쁜
영원한 부모가 된다.
아름다운 꽃잎 모두 떨구어도 결코 울지 않는...




둘째가 유아세례를 받을 때 간증문을 쓰다가 지은 시입니다.


거저 부모가 되는 것으로 알았지만, 아무도 거저 부모가 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이를 가지고, 낳고, 키우는 그 모든 과정들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열달의 시간과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면서 겪는 고통의 시간, '제발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잠 좀 자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과 아이 뒤만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 시간들까지... 그리고 이 다음 아이들이 좀 더 큰 후에는 또 갖가지 소동들이 있겠지요. 


아이를 키우면서 부족한 나의 내면과 모자란 능력과 황폐한 영혼을 만나기도 합니다. 가끔 그것이 아이에게 화살로 돌아갈 때면 그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기도 하고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모가 되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되는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곤 하지요. 하지만 그보다 귀하고 기쁜 일 또한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가장 어여쁜 열매 하나를 세상에 예쁘게 놓아두는 일.

나는 가장 고통스럽지만, 또 가장 기쁜 부모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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