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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an 26. 2017

아파서 또 아픈 엄마

엄마들은 항상 아프다

초등학교 친구 중에 부모님이 쌀집을 하는 친구가 있었더랬다. 쌀도 팔고, 여러 가지 식료품을 파는 가게를 했었는데, 아버지는 한량이어서 늘 친구들과 놀러가고 없었고 그 친구의 엄마가 늘 쌀집을 지키고 있었었다. 


친구의 엄마는 항상 미간에 주름이 잡혔고, 관리도 하지 않아 치석은 치아를 거의 다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어딘가 아파 보였다. 아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에 치여서 지쳐 있었고, 아이의 친구들이 놀러를 가도 관심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그냥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죽겠다는 걸 어린 내가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들의 무력감이란 것은 그 시대 엄마들의 전유물이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엄마란 존재들은 늘 어딘가가 아프다. 

 



"수술 안 한 다리가 수술한 다리보다 더 아프고, 한쪽 어깨도 아프고..."


전화 통화가 시작되지 마자,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엄마에게 나는 짜증을 버럭 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물어본 게 아니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전화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엄마는 아프다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엄마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났다. 엄마는 늘 어디가 그렇게 아프냐며. 내가 아플 땐 언제 거들떠나 본 적이 있었냐며. 나도 여기저기 아픈 데 많다며. 그렇게 짜증을 내고선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결혼하고선 시어머니까지 늘 어디가 아프다고 했다. 엄마가 아프다고 하는 것도 짜증이 나 죽겠는데, 이제는 시어머니까지 전화만 했다하면 아프다고 죽는 소리였다. 자식이 걱정할까봐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하는 엄마들은, 아파도 잘 지낸다고 거짓말하는 엄마들은 도대체 존재하긴 한다는 말인가. 그런 엄마들은 텔레비전 드라마나 인간극장 정도에서만 등장하거나 이웃집에만 살고 있다는 말인가.


아프다는 말에 매몰차게 전화를 끊은 딸에게 엄마는 이제 아프다고 하소연할 데도 없어졌다. 이제 기껏 해봐야 사위한테나 가끔 전화가 오면 아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를 낳고서 지금까지 나는 알 수 없는 병으로 계속 아프다. 어떤 날엔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런 내게 양쪽의 엄마들은 수시로 마치 내가 더 아프다고 경쟁이라도 하듯 '아프다, 아프다' 소리들을 해댔다. 그런 양가의 엄마들이 지긋지긋해졌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엄마와 사이좋은 딸들을 보면 배알이 꼬였다. 일하러 가는 딸을 위해 손주를 봐주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누군가의 엄마를 보면서 저건 분명 가식일 거라 생각했다.


내겐 모든 사이좋은 딸들과 엄마들은 지극히도 징그러운 대상들이었다.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사람들 같기만 했다. 




나는 폭력적인 아빠보다 무식한 엄마가 더 싫었었다. 그런 엄마가 몹시도 부끄러웠었다. 폭력적인 것은 나만 보면 되지만 무식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다 보이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 안 통하는 엄마가 싫었다. 다른 잘 배운 엄마들처럼 철학 이야기, 문학 이야기, 정치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의 엄마였으면 했었다. 나는 엄마랑 있으면 할 이야기가 없다. 여자는 결혼만 잘 하면 된다는 엄마가 몹시도 싫었었다. 만날, 딸 하나 부여잡고 하소연하는 엄마가 싫고 또 싫었다. 연약하여 자식인 내가 기댈 곳 하나 없이 오히려 엄마에게 기대라고 해야하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자식의 아픈 곳보다 자신의 아픈 곳만 말하는 엄마가 싫었다. 내 얼굴의 모든 컴플렉스는 엄마로부터 온 것이 또 싫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살라는 엄마가 싫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가 맨 아래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딸이 아이를 낳았는데도 미역국 한그릇 끓여주지 않았던 그 엄마가 제일 싫었다. 


아빠가 살아있을 땐 불쌍한 사람이고, 가여운 사람이었지만 아빠가 돌아가시자 그냥 싫은 엄마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의 늙은 손을 봤다. 손이 늙는 건 얼굴이 늙는 것보다 감추기 힘든 것이다. 기억 속의 엄마의 손과 실제의 손이 너무 달랐다. 엄마의 손은 투박해져 있었고, 어두었다. 시내 어디에선가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헤어지던 순간의 엄마의 뒷모습에 그만 와락 눈물이 나왔다. 좋은 사람이고 가여운 사람인데 나는 그녀를 좋아했던 순간보다 싫어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 날 이후로 엄마의 전화는 뜸해졌다.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데 딸은 그 말에 또 짜증을 낼 것이기 때문에...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어디 아프다는 말도 속 시원히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더 아픈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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