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Jan 23. 2017

단 하나의 사랑

우리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누군가의 사랑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명의 사랑을 합쳐도 그 한 사람에 대한 갈망을 다 채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많은 이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소외감이 나의 근간을 흔들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여인이었다.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 

때론 창가에서 나른한 오후처럼 노래를 불렀고, 때로는 철부지 동생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했고, 때로는 비에 젖은 고양이처럼 연약하기도 하였다.


많은 남성들이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였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그녀처럼 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그녀는 외로웠다. 자기가 사랑받고자 원했던 사람의 사랑은 결국 그녀에게로 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했으나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남으로써 그녀를 배신하였고, 그 상실감과 배신감을 위로해 주겠다던 두 번째 남편 역시도 다른 여자를 만남으로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배신 트라우마를 안겨다 주었다. 두 번의 배신으로 그녀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죽을만큼 사랑한다고요, 날 좀 바라봐주면 안 되요?


오드리 햅번.

'타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그녀가 맡았던 홀리가 뱉은 대사처럼 그녀는 자신을 바라봐주는 유일한 한 사람을 원했을 것이다. 은퇴 후 유니세프를 통해 봉사를 하던 그녀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느때보다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그녀가 슬펐다. 지금처럼 행복했던 순간들이 그 전에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져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녀를 기억하고, 오드리 햅번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상징처럼 되었다. 아름다움의 상징.봉사의 상징.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겠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단 한 사람을 원하며 사는 것일까.

이제는 단 한 사람을 기다리는 그 간절함이 어느 고시대의 유물처럼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지만, 그것의 가치는 닳고 닳아 누가 사랑의 맹세 앞에 배신을 한대도 그리 놀라거나 절망스러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옛날에는 누군가의 배신에다 대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의 반응들이 만연했다면, 이제는 다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의 반응으로 바뀌었으니까.




누군가가 그랬다. 

이제는 로맨스 영화가 흥행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사랑은 이제 현실에서는 실현불가능한 사랑이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이제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게 되었다고.

영화 '늑대소년'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소년이 그냥 인간인 소년이 아니라, 늑대인 소년이기 때문이라고. 인간은 한 여자를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릴 수 없지만, 늑대는 그럴 수 있기에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 거라고.

이제는 한 여자를 그렇게 기다릴 수 있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이고, 저승사자이며, 인어아가씨이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들이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것은 이제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었고, 인간이 아닌 자들의 것이 되고 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희생이, 그 사랑이 버거워 혼자 살기를 택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자식을 낳아 희생하는 시간 대신 나 혼자 아니면 부부끼리만 현실을 즐기기로 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어쩌면 먼 훗날 어느 박물관에서는 '어머,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사랑을 하면서 살았던 거야?', '어쩌면 이혼 한번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수 있었지?'라며 마치 역사책을 들여다보듯이 이야기할지도 모를 일이다. 


단 한 사람의 사랑이 우리에겐 절실하지만, 단 한 사람의 사랑이 점점 버거운 것이 되었다.


옛날의 낭만의 불씨에 입김을 세차게 불어 그 조그마한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르게 되기를,

연인의 사랑이, 부모의 희생이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시대가 우리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맹세가 우스갯거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속하는 거야. 그게 유일한 행복의 기회니까.

- '티파니에서 아침을' 중 폴의 대사 -



매거진의 이전글 삐에로는 웃고 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