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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an 31. 2017

외로움은 향기를 가졌다

아름답고, 찬란한 향기

사람들은 가끔 감정이라는 것을 인간의 전유물로 생각하곤 한다. 아니, 우리는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의 감정의 상태뿐만 아니라 그 표현 자체를 배워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었기에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인간은 서로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차기에 그 외의 생명체의 감정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인지도. 


예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하는 어느 프로그램을 보다가 슬픔을 표현하는 동물들의 제각각의 모습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동료, 가족이 죽었을 때 그 시체에다 얼굴을 박고선 슬픔을 표현한다든지, 한 동안은 식음을 전폐한 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다든지, 심지어 우울증에 휩싸여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버린다든지...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일종의 경이로움까지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식물에게도 이런 슬픔과 외로움이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예전에 친한 교회 언니가 산세베리아를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한 때, 화분을 선물하고 또 선물 받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었었기에 꽤나 그 선물이 소중하였었다. 그래서 물도 주고 가끔 영양제도 놓아주면서 마치 내게 선물해준 그 마음 하나를 대하듯 산세베리아를 대했다. 산세베리아는 그렇게 3년의 시간 동안 무탈하게 내 방 화장대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세베리아 잎사귀들 옆에서 정체불명의 대 하나가 올라오더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산세베리아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말하길, 산세베리아 꽃은 정말 보기 힘들다고 또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도 했다. 그 꽃의 모양새와 향기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이제껏 맡아본 꽃내음 중 단연 최고였다. 그런데, 어느 꽃 파는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산세베리아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그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꽃을 돌봐 주어야 할 사람이 꽃을 잘 돌봐주지 않을 때 산세베리아는 꽃을 피운다고. 산세베리아에게 직접 들은 말도 아니요, 꽃 파는 아저씨가 하는 말이라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진 모르겠으나 나보다 꽃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의 말이니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닐 거라 믿는다.


그래, 그 즈음에 알아서 잘 크기에 물도, 관심도 제때 주지 못하긴 했었다. 하나의 대상을 향한 관심이라는 것의 수명이 얼마나 짧은 것이었던지. 어쩌면 자신에게로 향했던 관심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향긋한 꽃을 피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밖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연약한 식물 하나를 보면서 어쩌면 사람의 외로움에도 지독한 향기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외로움은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려나...



지나치게 밝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어둡고, 말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몹시도 외로울 것이라 생각하곤 하지만 진짜 외로운 사람은 보기에 하나의 티도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우울증을 앓는 아이들은 지나치게 밝게 행동하는 경향들이 있다. 밝은 분위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라도 하는 것처럼.


외로움의 향기를 진하게 내뿜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때론 밝은 웃음이고, 지나치게 명량한 말투이며, 아무 근심도 없을 것 같은 분위기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산세베리아는 마지막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꽃이 지고난 후 1년 쯤이 되어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관심을 더 기울였더라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 결혼과 출산과 이사 등 여러가지 일로 산세베리아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다. 아니, 이젠 더 이상 소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식물을 키울 때 좋은 음악을 틀어주고,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냥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산세베리아의 꽃은 눈물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 꽃이 피고 질 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마냥.


어쩌면 큰 관심이 아니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저, '너 잘 있구나' 이 정도의 인사로도 충분했을지도. 그냥 마른 목에 물 한 모금 줄 수 있는 관심이면 충분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아주 큰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저 잘 지내냐는 한 마디의 안부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향기를 우리가 기억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꽃밭에서 함께 웃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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