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Feb 03. 2017

행인된 자의 독백

가끔 리셋 버튼을 누르고 싶어진다

행인 2


블럭버스터나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던 인생은
관객 얼마 들지 않는 저예산 독립 영화의 이름 모를 행인2가 되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난데없는 징검다리가 나타났고 
다리가 짧은 나는 징검다리에 가닿기 전에
검은 물 속으로 풍덩 빠지곤 했다.

물구덩이 안에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외로움과 치욕이 난무했다.
외로움이라는 것과 치욕이라는 것은 
신이 나도 모르게 내가 차고 태어난 주머니 안에 
몰래 넣어둔 것이리라.

텔레비전에서 배우들의 몸값을 순위로 매기고 있다.

나는 얼마쯤의 몸값을 지닌 배우인가요?
내가 나오는 영화의 값은 얼마죠?

그런 건 주인에게 물어봐야지.

그래서 내 인생의 주인에게 물어본다.
귀하기에 값을 매길 수 없다고 대답한다.

주인은 가끔 거짓말을 한다.

나를 만드실 때 실수하신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어쩌면 나를 맨 나중에 만드신 건 아닌가요?

원래 무엇이든 처음엔 공들여 만들다가
나중에는 귀찮아 대충 만들곤 하니까요.




나는 아직도, 아직도 나는

치욕스러웠던 지난 날들을 놓지 않고, 꿈 속에서라도 누군가를 흠씬 두들겨 패고

외롭지만 외롭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의 연속된 삶을 살면서 내게 남은 고통이 더 있느냐고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삶을 얼마나 더 살아내어야 하는 것이냐고 신에게 따진다.


가끔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라며 마치 쓰레기통에 휴지를 버리듯 내게 자신의 쓰레기들을 버린다. 너에게만 하는 말이라고. 비밀을 지켜 달라고. 나는 그것이 기쁜 일인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신뢰를 주는 인간인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저 그들의 소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라는 것들을 마치 액받이 무녀가 된 것처럼 받아주는 쓰레기통에 불과했다. 그 비밀들을 듣는 것 자체가 때로는 고통이었으며, 그들의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는 강박이 또한 진절머리 나게 싫었고, 정작 나의 비밀들을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그들에게 신뢰를 느끼지 못하고 그들은 내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고통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에게라도 자신의 고통을 털어놔서 시원했을까...


폐허 위에서 태어나 아직도 폐허 위를 살아가고, 어떤 위로와 위안도 되어줄 수 없는 타인들과 어떻게 해서든 비비고 살아보겠다고 눈물겹도록 나뒹굴며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애써 안위하고 있다.


가끔,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내게도 제 2, 제 3의 인생이 또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있는 힘껏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삶을 살아보겠노라 다짐하곤 한다. 아니, 최소한 양심이라는 것이 신에게도 있다면 내게 그런 삶을 한번쯤은 허락해야 한다고.


시덥지 않은 위로가 가끔은 시덥지 않은 것이 아닐 때,

징징대던, 낑낑대던 소리가 내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할 때,

더 이상 외로움을 말하지 않아도 될 때,


나는 나 된 것으로부터의 속박에서,

바닥을 기고 또 기다가 까진 상처에서 피가 나는 곤궁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끔,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되는 삶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나를 상상해보곤 한다.




더 이상 독백이 필요 없는...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움은 향기를 가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