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Feb 09. 2017

카페인 우울증

나만 지지리궁상이야~

최근에 인스타그램을 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는 나와 지인들의 사적인 공간이라면 인스타그램은 다소 공적인 공간, 비교적 덜 사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게 되었다. 한창 페북에 글을 많이 썼는데, 글을 올릴 때마다 자꾸만 폐친들에게 알림이 가니까 부담이 되기도 했고 뭔가 새로운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로서의 나의 삶을 그 안에 채워 나가고 싶었다.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인스타그램은 다른 SNS보다 좀 더 무작위적이고, 자신의 속살을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곳에는 선정적인 옷을 입고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거나, 매일매일 요리한 음식들을 찍어 올리거나, 셀카들을 올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페북처럼 개개의 게시글마다 공개, 비공개를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비공개 아니면 완전히 공개 이 두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어느 날, 심심하다는 명목 하에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던 중 어떤 예쁜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결혼한 새댁이라 엄밀히 말하면 아가씨도 아니지만, 나이도 외모도 그냥 아가씨였다. 아주 잠깐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봤을 뿐인데도,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식구가 몇 명인지, 친오빠와 남편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디에서 공부를 했는지 등등을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나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나는 그녀가 쓴 글에 그만 하루종일 울화가 치밀고 우울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빠, 부족한 것 하나 없이 나를 지금까지 이렇게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내가 더더 잘할게~"


그녀가 쓴 이 단 한 줄의 글을 읽고선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컸다는 그 말에 나는 그만 나의 부족한 것 많았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면서 처음부터 부족하지 않았던 그녀는 지금까지도 부족한 것 없이 사는 것 같고, 처음부터 부족한 것으로 가득한 나의 삶은 여전히 부족함의 진행형이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아 그만 인류에게 지극히도 불평등한 신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나에겐 그리도 가혹했으면서 그녀에겐 참 많은 것들을 주셨나보네요. 


그렇게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뉴스기사를 읽던 중 '카페인 우울증'에 관한 기사를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커피를 마시면 우울함이 더 올라간다는 기사인건가하고 클릭을 했는데, 카페인은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글자들을 딴 것이라고 한다.


SNS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 특히, 외부와 단절된 채 육아에만 전념하게 되는 엄마들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SNS를 하기 시작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들 옷을 예쁘게 입고, 정갈하고 맛나 보이는 음식들을 차리고, 아이들 교육 또한 잘 시키고, 좋은 곳으로 여행도 가더라는 거다. 그래서 나 빼고 다들 행복하다며 우울증에 빠지게 되지만 또 너무 외로워서 SNS를 끊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끊고 싶지만 끊기 힘든 커피의 카페인과도 그 속성이 유사하지 않은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순간들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들을 알면서도 자신의 추레하고, 지지리궁상인 몰골과 비교하게 되고, 예뻐 보이는 누군가를 추앙하듯 팔로우를 하고 너무 예쁘다고 댓글을 남기면서 결국 자괴감에 빠져들게 되고... 좋은 댓글을 다는 것이 좋은 일들이지만 '너무 예쁘셔서 팔로우하고 가요~'라고 남겨진 댓글들을 보면서 이 사람은 지금 이 순간 깊고도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들 둘을 데리고 만날 호텔에서 놀고, 외모도 연예인 못지 않은데다, 남편의 기럭지까지 모델인 어느 예쁜 아줌마같지 않은 어린 아줌마를 보다가 그만 기럭지 짧은 남편에게 애꿎게 이러저런 폭풍잔소리를 해댄 나처럼 말이다.


거기다 그 곳엔 책 내고 팔로워 수도 어마무시한 작가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 것인가 말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문우들, 이 곳에서 만난 작가들, 구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이건만 나는 그 곳에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부여잡고, 세상 불공평하다고 툴툴대고나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일인지.


나의 어리고 어린 마음들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돌아올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찾아 집으로 오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행인된 자의 독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