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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Feb 17. 2017

영혼이 옷을 벗는 순간

춥지 말라고 다시 옷을 입혀주고 싶다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태어나는 인간에게 신은 춥지 말라고 그 영혼에는 아주 따뜻한 옷을 입혀줄 것이라 생각해왔었다. 그것이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최소한의 방법일 것이라고. 그런데 살아가면서 육신은 이 옷 저 옷을 걸쳐 따뜻해지는 반면, 따뜻했던 영혼은 여기저기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점점 헐벗게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점점 차가워지고 점점 메말라가는 것이 아닐까하고...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전날 저녁, 아빠는 잠바를 사주기 위해 백화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꽤나 마음에 드는 점퍼가 있었는데, 아빠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망설이며 사주지 않았다. 나는 어떤 것이든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채 돌아와도 실망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다. 문밖에는 갑자기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은 어찌 이다지도 성실하고 또 게으르다는 말인가. 예상보다 일찌감치 와서는 죽치고 앉아 내내 돌아가기를 주저하고 꺼리니 말이다. 


전날 잠바를 사지 못했던 탓에 나는 그냥 스웨터만 입고선 학교로 향했다. 모두들 겨울 잠바를 입고 등교를 하는데 나는 매서운 날씨에 입을 만한 잠바 하나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스웨터만 입은 나는 아주 호기롭게 하나도 춥지 않다고 친구들에게 말했고, 실제로도 전혀 춥지 않았다. 어쩌면 신이 나의 영혼에 무지 따뜻한 오리털파카를 입혀놓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 가장 아래쪽에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찼다. 그 부끄러운 마음을 가리기 위해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는 사람들이 버린 꽁초들을 주어 모아 그 안의 내용물을 다 꺼내서는 종이에 돌돌 말고 있었다. 남들이 버린 꽁초 그대로를 태우기엔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있었나보다. 아빠는 과연 새로이 제조한 담배를 태울 수 있었을까... 담배를 하나하나 분해하던 아빠의 모습을 본 나는, 전 날 아빠 마음에 드는 잠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돈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돈이 없었으면서도 왜 나를 백화점에 데려갔던 것일까. 아빠는 늘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곤 했는데, 담배 하나 살 수 없었던 아빠는 번지르르한 양복들은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묻고 싶었으나, 물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아들에게 제법 비싼 파카를 사주었다. 오리털 솜털만 무려 90%가 들어있는 프랑스산 파카였다. 할인을 하는데다 남편 옷까지 사니 직원이 할인을 더 해 주어 원래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샀다.


"아들, 넌 이런 멋지고 따뜻한 파카를 사주는 부모가 있어서 참 좋겠다. 엄마는 이런 옷 한번도 못 입어봤는데..."


내 아이였지만, 아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때와 달리 입을 옷이 없어 걱정하지는 않는다. 아니, 지난 날들의 한으로 나는 다른 것에는 욕심이 없는데 옷에는 욕심이 많다. 그 날 하루만 내가 옷을 못 입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그래서 비싸지는 않아도 예쁜 옷을 사입기를 즐긴다. 그런데 잠바도 입지 않은 채 영하의 날씨에 스웨터 하나만 걸쳤던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의 마음이 더 시리다. 종종 얼음판이 들어서고, 서리가 내리고, 칼바람이 들이닥친다. 


그 날은 그것이 서러워 울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날이 서러워 운다. 


사람이 나이 들어서까지 그 영혼이 따뜻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지금의 벗은 내 영혼의 몸뚱아리를 보면서 간혹 그날의 스웨터를 떠올린다. 그 아이에게 따뜻한 파카 하나 입혀주고 싶다. 스웨터 그 하나라도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여겼던 그 예쁜 아이에게.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의 내 영혼이 더 따뜻해지지는 않았을까... 사실, 몸이 추운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된다.


내 벗은 영혼은 다시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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