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예미 Feb 19. 2017

검은 날 빨간색 일기

얼음으로 굳어지기를

나의 검은 하루에 나는 온갖 빨간색을 입힌다.

그 빨간색은 어디로부터 나왔나.

토해낸 색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나는 드디어 외부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포한다.


요즘은 어떤 누구와의 수다도 재미있지 않다. 

하지 않아도 될 무의미한 말들을 쏟아내는 공간에, 시간에 있고 싶지 않다. 

온종일 우울하고, 온종일 철학적이고, 온종일 무거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과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나는 온종일 우울하고 온종일 무거운 이야기들만 하고 싶다.

가볍게 떠다니는 말들 위로 나를 올려놓는 순간, 나는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으니까.


또다시 명랑하기만 한 나의 자아가 튀어나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아무 티도 없는 사람으로, 몹시도 귀하게 또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사람으로 규정지을테니까. 가끔씩 나는 왜 내가 사람들만 만나면 그렇게 명랑하고 유쾌해지는지 그 모습이 찌질한 역사를 이어주는 것만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왜 그러냐고 사람들은 의아해서 묻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고 언어의 한계라는 것이, 아니 글에도 적당히 나를 감출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정도만 고백할 수 있을 뿐이다.


남편과 밤을 새도 모자랄 정도로 수다를 떨곤 했는데, 요며칠 남편과도 대화가 하고 싶지 않다.

위로받기 위해 하는 말들이 위로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말 대신 글들이 쏟아진다.

외부와 나와의 경계가 지어지는 순간.

그 경계는 분명 나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내가 지울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가끔씩, 나의 지난 찌질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찌질하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나의 못난 모습들이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20대에 누군들 찌질해본 적이 없었겠냐만은 나의 찌질함의 역사들은 누구보다 깊고 또 긴 것만 같으니.


나는 또 누군가를 죽도록 패주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 대상은 나에게 칼질을 해대고 주먹으로 패기 일쑤였던 아빠가 될 때도 있고

그 앞에서 아무 힘 없이 무감각하고 무미건조했던 엄마가 될 때도 있고

아빠에게 주먹으로 맞았다고 이야기하자 맞을 짓을 했겠지라며 웃고 말았던 이모일 때도 있고

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씩 왕따를 시켜댔던 가시나무같던 아이일 때도 있고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도 제 자식 보약만 챙겨왔던 시부모일 때도 있다.


그런 분노에 휩싸일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슴에 빨간약만 바른 채 키보드만 두드린다. 빨간 분노를 토해내고 또 토해내면 언젠가는 그 빨간색은 다른 색으로 변할까, 변하겠지 그 희미한 희망 하나를 품고서.


오늘은 그냥 내 기분만 온전히 드러내는 일기를 쓸 수밖에 없는 그런 날이다.

감추기 위해, 나를 감추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들을 한겨울 바람 앞에 던져놓고 얼음으로 얼기를 바라는 그런 날의 밤. 


매거진의 이전글 영혼이 옷을 벗는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