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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Feb 20. 2017

주인공이니까 외로운거야

삶의 가장자리에서는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지

부적응자들의 섬에 온 걸 환영해


주말엔 응당 영화 한 편쯤은 봐줘야 기쁜 주말의 기운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법이다. 아이들 때문에 마음놓고 극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겐 VOD라는 좋은 서비스가 있다. 최신영화부터 무료로 볼 수 있는 영화 100선까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무료니까하고 틀었던 영화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느꼈을 때만큼 큰 수확이 있는 것도 또 없다.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무료영화에서 뭔가 큰 보물을 얻은 것만 같다. 영화 초반에만 해도 재미없어서 그냥 끌까도 생각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영화 <월플라워>는 10대들의 방황과 부적응 또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는 여성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인공 찰리가 바로 월플라워이다. 어렸을 적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혔던 주인공 찰리에게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친구들이 생긴다. 찰리는 그들로 인해 드디어 자신만의 좁디 좁은 방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게 된다.


"여기 있는 모두가 널 혼자 남겨둘만큼 쿨하지 못해. 불량품들의 섬에 온 걸 환영해."



10대들의 영화라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인생을 그린 영화 같기도 하고, 인생의 많은 철학과 이야깃거리들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이 영화를 다 본 다음 마음 깊이 여운이 남았다. 흔들리지만, 생의 가장 찬란한 한 가운데에 있는 그들이 몹시도 아름다웠고, 그들이 쏟아내는 무수히 많은 말들과 질문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왜 좋은 사람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선택하죠?"

"사람은 자기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만큼만 사랑받기 마련이란다."



찰리의 질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결혼하기 전, 교회의 어떤 집사님이 나를 보며 어떤 형제(남자)든 골라서 시집을 잘 갈 수 있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나에겐 어떤 형제도 고를만한 자격도 능력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누군가를 사랑할 만큼의 처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더욱이 결혼이라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만큼의 사랑만을 받아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자, 함께 사이코가 되는 거야."



친구는, 너와 나는, 함께 기꺼이 사이코가 되어줄 수 있는 사이였다. 

어른스러웠던 어떤 친구가 떠오른다. 고 3 때 그 친구는 다른 남학생들과 섞이는 것을 꺼려했었다. 고등학생이라고들 하지만, 코찔찔이 수준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유치했던 남자 애들과 함께 어울리기에는 그 친구는 너무나 조숙하고 철학적이었다. 찰리처럼, 그 친구처럼 또래들보다 성숙한 아이들은 외롭기 마련이다. 철없는 친구들과 함께 사이코가 될 마음의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찰리에겐 함께 사이코가 되자고 손 내밀어주는 친구가 있었고, 동창에게는 그럴 만한 친구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도, 그 손을 잡는 것도 용기는 필요한 것이었고, 우리에겐 그럴 만한 용기가 충분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나에게도 나의 사이코가 되어줄 사람이,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더랬다. 상대의 어떠어떠한 면에 함께 섞여나간다는 것, 그 동질감은 외로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방어막이 되어준다.



의사는 우리가 어디서 올지는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어디로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내 문제의 답이 아닌 줄은 안다.
하지만 시작점은 될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찰리는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의 이야기들을 글로 남겼을 것이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의 조각들을 조립하고 끼워맞추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테지. 자신에게 닥친 상처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어떤 길로 들어설지 찰리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라 지극히도 외로운 것일 뿐, 지금을 살아가고 또 지금이 먼 훗날의 퍼즐들을 맞추어 줄 것임을, 지금 당장에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겐 함께 사이코가 되어줄 누군가가 있을 것임을, 누군가들의 행복의 한 편 한 편을 우리는 지켜보고 인생의 진짜 뜻을 알게 될 것임을, 그리하여 우리가 결코 하찮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찰리도, 나도 글을 쓰는 것이니까. 

문득 나를 그리고 사람들을 세상으로 통하게 하는 통로가 되어주기 위한 글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출발한 곳은 선택할 수 없어도 우리가 갈 곳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 나의 역사 자체가 그런 선택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암울했지만 그걸 이렇게도 극복하는구나'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


내가 비참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그 순간, 나는 살아있는거야.
일어서서 건물의 불빛들과 놀라운 풍경들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노랠 들으면서 드라이브 할 때
바로 그 순간, 우린 무한한 자유를 느껴.
난 알 수 있어.
네 삶이 슬픈 이야기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될 순간이 올 거라는 걸.
넌 살아있어.
널 궁금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어.
또한 지금 달리면서 나오는 노래를 들을 수 있지.   
세상에서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난 확신할 수 있어.
우리에게 한계는 없어.

       

                                                                                                    

"기쁘고 슬픈 마음이 한껴번에 들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삶이란 지독히도 기쁘면서도 동시에 슬픈 것으로 가득차 있다. 다음의 행복으로 이전의 아픔은 잊게 되고, 지금의 상처들과 슬픔들은 옛날 사진으로 남을테고, 모든게 괜찮을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을 것이다. 불량품인 것 같은 나의 존재가 지극히도 아름다운 존재임을 알게 될 날들이, 그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임을 우리는 먼 훗날 알게 되겠지. Nothing이라고 불렸던 찰리의 친구 패트릭이 결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음을,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별들도 모두 제각각의 빛을 내고 있듯이 우리의 빛 또한 지금 당장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 



https://www.youtube.com/watch?v=r590TaHktEo

저희 네 식구는 이 노래를 틀어놓고 아주 종종 춤을 추곤 한답니다~^^


지금 외로운 건 네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야.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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