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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Feb 23. 2017

타인은 정말 지옥인가

스스로 구원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신이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 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
그런데 치사하고 구차한게 뭔지 알아?
그토록 원망하고 저주스러운 신에게 나는 또 빌 수밖에 없다는 거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어느 날, 악몽에 시달린 후 깨어나 그 악몽의 잔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나는 엉엉 울면서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치매환자처럼 기분이 좋았다 또 금새 나빴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다가 마치 뒤죽박죽된 그 기분이 나를 이리 끌고 왔다 저리 끌고 갔다 제 멋대로 나를 조종하는 것만 같다. 그런 기분에 빠져 급기야 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그러면서도 그래도 지옥불에는 떨어지지 않겠다며 그 신을 믿어야한다고 그 신으로부터 멀어지면 안된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단단히 사로잡혀서는 그 사람에게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결국엔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곤 주저앉고야 마는 사람처럼. 


기분이라는 것은 얼마나 지조도, 염치도, 일관성도 없는 것인지.




얼마 전 아는 언니가 수개월동안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절대 상처같은 건 받지 않을 것처럼 강해 보이는 그 언니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겉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도, 별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속에서는 전투를 치르고 있음을 새삼 깨달으면서, 멀쩡해 보이지만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심리학 시간에 정신병자와 정상인을 오고가는 경계에 대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자기 자신도, 남들도 모두 정상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정신병을 앓고 있기도 하며, 정신과 의사들의 오류로 인해 정신병자라고 결론 내려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호한 그 경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난 지금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물음에까지 이르렀다. 어린 시절의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으며, 그러면서도 나를 너무나 닮은 큰아들에게 이상하게도 화를 내고 있었다. 나를 닮아 더 감싸주어야 할 것 같은데, 나를 닮은 그 모습이 너무나 싫고 화가 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싫은 모습과 남편의 싫은 모습을 다 담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났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 알면서도 쉽게 단정짓지는 못하는 그런 상태로 나는 멍하기만 했고.


한참을 남편 앞에서 울고, 남편도 나를 따라 울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토해내니 나는 그제서야 울음을 그칠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나는 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에 대한 분노로 점철되어 감정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좋은 부모는 만나지 못했지만, 좋은 시부모는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시부모란 존재는 자기들 좋을 때만 가족 운운하는 존재들인 것인지, 며느리 생일 한번 축하해주기는 커녕 내가 아들을 낳아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조차도 자기 아들 먹일 홍삼을 달여와서는 너는 먹으면 안된다는 말만 남겼다. 제 딸이 아이를 낳았으면 제 딸 몸조리에 좋은 걸 챙겨왔을테지만 며느리의 몸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놓고선 날더러 가족이라고 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냐는 말을 했다. 시어머니의 그 기만적인 말이 역겨웠다. 시집에 와서 아이를 낳아라 뭐를 어떻게 하라고 간섭할 때만 가족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시부모에 대한 화는 내 앞에서 홍삼을 홀짝홀짝 마셔대는 남편에게로 이어졌고, 나는 온통 화가 났다. 아직도 자기 부모님 집을 '우리집'이라고 지칭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고, 시부모 편을 드는 모습에 화가 났고, 가끔 생일이라 시아버님이 꽃바구니를 보냈다며 누군가가 사진이라도 찍어올리는 날에는 속에서 또 불이 났다.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키고 싶었으나 내 부모의 자리에 시부모가 대신 들어차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만 같았다.


화는 나의 몸과 감정을 집어삼켰다. 한의원에서는 화병이 나도 단단히 났다고 했다. 


부모든, 시부모든 나에게 부모들이란 다들 원수같기만 한 것인지. 나는 이제 그 원수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화병으로 몸이 아파오면서부터 나는 너무나 살고 싶었으므로.




일찍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는데, 나는 나를 지옥에서 살게 하는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치열한 전투를 끝내고 마침내 평화를 얻고만 싶다. 그리고 어떤 인간에게도 기대라는 것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자꾸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댈 때면 또다시 지옥불에 나 스스로를 내던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타인, 그것은 정말 지옥인걸까... 

신은 이미 우리에게 지옥이라는 것을 준 후에 천국이라는 것을 꿈꾸게 한 것이란 말인가.

그 지옥불에서의 구원은 신도, 다른 이도 아닌 나 자신밖에는 없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화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불이 주렁주렁 달리면
우중충한 하늘만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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