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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Feb 28. 2017

어쩌면 빛났을 졸업식

내가 빠진 나의 졸업식

"오늘 연대랑 이대랑 졸업식 해서 그 일대가 엄청 막혔다고 하더라고"


저녁에 스케줄이 있어서 나가는 나를 태워다 주면서 남편이 말했다. 그래, 졸업시즌이지. 그러면서 졸업식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졸업식 하면 고등학교 졸업식이 못내 아쉽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면서 세상으로 나가야한다는 것이 내겐 극심한 공포였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지독히도 싫었었다.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서울이었지만 막상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학을 갈 생각을 하니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기만 했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정든 선생님들을 보지 못하는 것도 내내 섭섭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난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졸업식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정말 사채 끌어다 쓰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사채까지 썼더라면 나는 차이나타운에 나왔던 박보검처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어디로 팔려갔거나 벌써 어떻게 돼도 됐을거야. 그랬다면 자기도 못 만났겠지. 정말 아찔하다. 나는 진짜 인생을 외줄타기처럼 살아온 것 같아."


"그래도 그 외줄 잘 타서 이렇게 꿋꿋이 살아남았잖아~ 자기 인생은 진짜 지은탁이었어"


"지은탁에겐 그래도 도깨비 공유라도 있었지, 난 그런 존재도 없이 늘 혼자서 아휴..."


지금에 와서 지난 날을 떠올리면 아찔했던 순간들이 많다.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 기적같기만 한 그런 순간들.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은 빚쟁이들이 학교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대학 원서를 쓰는 날도 빚쟁이들이 학교로 찾아오는 바람에 원서를 쓰고는 마치 도망자처럼 그들의 눈을 피해 도망가야만 했었고, 졸업식에 가면 또 빚쟁이들이 학교로 찾아올 것이 뻔했기에 졸업식조차도 참석할 수 없었다. 그 때 받지 못했던 졸업장과 졸업앨범은 여전히 못 받고 있는 상태이고, 그때 담임선생님은 내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해 두고두고 나를 원망했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얼마 전, 엄마는 아빠가 엄마 이름으로 남긴 빚을 모조리 다 갚아버렸다. 그 빚을 갚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몇 년동안 끌어왔던 빚을 하루만에 다 갚았다. 내 앞으로 아빠가 남긴 빚도 있었지만, 아빠가 돌아가실 때 상속포기를 하였으므로 내게 남겨진 부담은 없다. 물론 그 전에 내 이름을 빌려 아빠가 진 빚들은 모두 갚아야 했지만 말이다. 며칠 전에는 법원에서 아빠에 대한 채권이 소멸시효가 도래하여 당사자표시 정정을 해서 상속자인 나에게 빚을 갚으라며 소장을 보내왔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이미 상속포기를 하였으므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서를 보냈다. 남편이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일 처리가 수월했지 법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었다면 2주 이내에 답변서를 보내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난 이미 상속포기를 했는데 뭐' 하고 있다가 고스란히 빚을 갚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법은 무지를 용서하지 않으니까.


가끔, 인생을 어쩌자고 그 따위로 살수밖에 없었는지 아빠가 원망스럽고 또 한심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은행 빚만 있어서, 일반 사람들에게 진 빚만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사채까지는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그랬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곤두박질 쳤을지...




우리의 인생은 가끔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못할 때가 찾아온다. 때로는 부모가 지은 죄와 빚을 자식이 고스란히 떠안을 때도 있다. 죄는 용서가 되어도 그 흔적은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가끔 내 이름이 부끄럽다. 어느 빚쟁이가 나의 이름을 알아볼까봐, 아빠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듣고선 나를 알아볼까봐. 그래서 나는 나의 무거운 이름을 벗어던지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도 개명을 원했지만 또 그 이름에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어떤 영광의 자리도 주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부모로 인해, 부모의 죄로 인해 나의 이름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 무게는 그냥 가볍게 벗을 수 있는 외투 정도의 무게는 아닐 것이다. 


어떤 이들의 빚은 물질적으로 갚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진 빚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어쩌면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빚이지만 나에겐 나의 빚인듯 느껴질 때가 많으니까.


내가 준 이름이 나로 인해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자식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며칠 후면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이다. 아이들의 입학식과 졸업식은 최대한 기쁜 날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나의 지난 날을 조금은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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