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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Mar 08. 2017

홀로이지만 홀로가 아닌

당신과 나의 행위

어느 날엔가부터 내 삶엔 글을 쓰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나뉘었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숨을 쉬는 행위와도 유사했다. 


며칠 동안 컴퓨터가 되질 않았다. 윈도우가 이상한건지, 모니터가 이상한건지, 그래픽카드의 문제인 것인지 도통 알 수도 없는 원인으로 컴퓨터는 켜지기를 거부했고, 켜졌더 하더라도 윈도우 창이 뜨지 않거나 윈도우창이 뜨더라도 갑자기 모든 아이콘이 무진장 크게 나타나든지 화면이 갑자기 떨리든지 말썽을 피워댔다. 


그러는 동안, 갑자기 쓰고 싶은 글들은 왜 그렇게 넘쳐나는 것인지(원래 먹고 싶은 것도 없다가 갑자기 돈 떨어지면 먹고 싶은게 자꾸 생기는 것처럼),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미칠 노릇이었다. 물론 손글씨로 글을 써도 된다. 그럴려고 두꺼운 노트까지 장만해 놨으니. 하지만 손글씨의 속도가 머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이제는 글씨 쓰는 것에 무지 힘이 들어가 조금만 써도 팔이 아파오기도 했으므로 손글씨는 효율성의 면에서 보나, 글을 쓴다는 만족감에서 보나 여러모로 나의 욕구를 채워주지를 못했다. 그리고 틀린 글씨는 지우기도 쉽지가 않으니, 예쁘게 남겨놓고 싶은 욕구로 인해 한 줄이라도 틀렸다가는 처음부터 모든 문장을 다시 써야 하니 말이다.


되지도 않는 컴퓨터를 부여잡고 씨름을 하고 급기야 속이 부르르 끓어올랐다. 그러고는 끝내 속도가 너무 느려 몇 달 동안 켜지 않았던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그나마 노트북이라도 있어 숨이 끊어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까딱 잘못하다간 숨을 껄덕껄떡 대다가 물 속으로 꼬르륵 잠길 뻔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내겐 글을 쓴다는 것이 일종의 나의 존재와 나의 살아있음과 나의 나됨을 증명하는 것이려나... 도대체 글을 쓰지 않은 날에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지금은 그것이 숨 쉬는 것과도 진배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쓰고 싶은데 쓸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치 그 순간이 지나면 내 머릿 속과 마음 한가득 채우고 있는 그 활자들이 마치 날아가버리기라도 하듯 그 시간이 지나면 그 글을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사람들끼리 모여서 글을 쓰는 곳에 다녀왔다. 집에서도 충분히 혼자서 쓸 수 있는 글들이지만, 굳이 그 곳을 찾았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지친 마음에 '나들이'라는 살짝의 빗소리를 들려주고 싶기도 했다.


시적인 가사의 음악이 흘렀고, 어떤 시인이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또 몇 명이 나와서 자신이 쓴 글을 읽기도 했다. 모두들 홀로인듯 했으나 홀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나 홀로의 행위이지만 누군가 그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거나 공감을 한다면 그건 여려 명의 행위가 된다. 그래서 내겐 그토록 그 행위가 고통스러우면서도 나의 삶 자체를 이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남편이 글을 쓰는 나를 향해 우려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심리가 극도로 불안정해 보인다고, 그 동안 묵혀두었던 모든 상처들이 튀어나와 더 힘들어 보인다고.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그러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만큼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내 마음이 놀랍도록 정화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종이 위에다 검은 것들을 모두 놓아두리라 다짐했는데, 진짜로 하얀 것이 검은 것이 될 동안 내 마음 속에 쌓였던 찌꺼기들도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물론 앞으로 찌꺼기는 또 쌓이고 또 쌓이겠지만, 난 또 그것을 내가 서 있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날려버릴테니 바람 타고 훨훨 날아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곳에 있었고 또 살아가고 있다고 외쳤던 지난 날들... 그 시간들 끝에는 어제의 슬픔 대신 내일의 낭만이 들어찰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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