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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Mar 12. 2017

안녕, 내 처음의 안식처

잠자던 꼬맹이의 울음

바람은 등 뒤에서 불고
따스한 햇살은 앞에서 비추길 바랐건만
봄은 언제나 멀리 있고 짧기만 했다.

차마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했던 삶의 한자락 한자락을 
나무 안에다 심었다.  

바람이 불어와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기는 해도 결코 뿌리째 뽑히지 않을
큰 나무 안에다 그 모든 걸 놓아두고선
나도 그 나무처럼 되겠노라 다짐했다.

울고 싶었던 마음을 누군가는 알았던 것인지
마음 한가운데에 우물 하나 들어서고
나는 어린 아이가 되어 목놓아 울었다.

이 울음 누구에게 말해야할지 몰라
그저 큰 소리로 울기만 했다.

잠자고 있던 열살짜리 꼬맹이가 깨어나 그렇게도
섧디 섧게 가슴을 파내고 또 파내었다.




친정엄마가 손자 손녀를 키워주는 여자들을 보면서, 제 새끼를 왜 자기 엄마한테 키워달라고 하는지 배알이 꼬여 그녀들을 욕하면서도 그것이 부러웠다. 꼭 자식들을 잘 키워준 엄마들이 손자 손녀들도 잘 키워주는 것만 같았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로부터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나는, 그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을 받고 싶었다. 이제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엄마에게 우리 집 근처에서 살면서 아이들도 봐주고 나에게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지금부터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엄마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남은 마지막의 시간도 나를 위해 쓰지 않기로 작정했고, 결국 엄마의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다. 


"좋은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이랑 살까 싶어..."


물론 누군가가 생겼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는 지나치게 눈치가 빨라서 멀리 살고 있는 엄마지만, 그냥 흘리듯 하는 이야기에서도 많은 단서들을 잡아내고야 만다. 그래도 그냥 누군가와 만나는 정도만으로 끝낼 줄 알았다. 이렇게 내가 아닌, 손자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여생을 보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엄마에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간 못했던 것들을 나에게 해주어야 한다고, 나 혼자 나의 상처들을 풀게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새로 시작하기엔 엄마는 이제 늙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엄마로서의 삶보다는 여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결국 나의 문제는 나 혼자서 풀어야 하는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옆에 엄마가 있더라도 결국은 내 안에서 내가 해결해야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가 이렇게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엄마, 할머니 보고 싶어서 우는 거야?"

"응..."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도망가버릴까봐 늘 걱정했었는데, 이제 정말 엄마가 나를 두고 도망가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엄마를 잃은 것이 현실이 된 것같은 기분에 나는 어린 아이가 되어 엉엉 목놓아 울었다. 엄마 앞에서도 울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울고, 집에서도 울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했다. 남편의 그 말이 고맙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여 또다시 엉엉 울었다.


잠들어 있던 꼬맹이가 깨어나 엄마가 가버리고 없던 그 날처럼 울고 있었다. 

이제 엄마와 영영 작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 같았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버린 엄마를 보며, 자식을 둘이나 낳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서는 그렇게 처절하게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가 되어서 자기보다 열 살 넘게 많은 아저씨랑 살겠다는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고, 부인이 떠난지 일 년도 되지 않아 그 부인과 수 십 년을 살던 집에서 새로운 여자와 살겠다는 그 아저씨의 마음은 또 무엇이며,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 집의 딸들은 또 어떤 마음인건지 온통 의문이기만 했다.


함께 여행을 가자는 나의 말에는 항상 너희들끼리 가라고만 하고서는 그 집 딸들이 해외여행을 가자는 말에 여권을 만들었다며 들뜬 마음을 전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더 이상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의 행복을 빌어주어야 어른이라고 누군가들은 이야기하겠고, 나 역시도 그리할 수박에 없겠지만 나의 상처는 결국 나만의 것이 된 것이 못내 서러웠다.


'도대체 이 마음 누구에게 말해야 하나요... 도대체 누가 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속으로 이렇게 되내며 나는 다시 열 살짜리 꼬맹이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엄마 생각하며 우는 것을 보며 나이 들어 뭔 짓이냐고 속으로 욕하기도 했었다.


누구나 그 마음 속에 사라지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는 어린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그 아이를 다독여주는 것도 그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언제나 자기 자신의 몫이다. 간혹 우연히 누군가의 눈에 띄어 위로라도 받게 된다면 숨었으나 결코 숨을 수 없었던 아이는 드디어 사라질 수 있을까.


누군가의 부모여도 누군가의 자식으로 보살핌을 받고 싶은 것은 모든 이들의 가장 태고적의 욕구인가보다. 어쩌면 엄마의 자궁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안락하였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해도 내 몸 어딘가에 깊이 새겨진 것일지도. 마치 지울 수 없는 문신인 것마냥 우리는 그 안락함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안녕, 내 처음의 안식처...'


'안녕,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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