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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May 01. 2017

누구에게나 불운한 제비 하나쯤은

불운한 제비가 곧 불행한 인생은 아님을...

인생이 아직도 곤궁하다고 느껴지면 여지없이 화가 났다. 


어렸을 때는 곤궁함이 슬프기는 해도 화가 나는 일은 아니었다. 

어른이 되면 나는 왠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고, 그럴 정도로 내겐 여러 재능들이 많았고, 어른이 되면...어른만 되면 모든 속박들에서 풀려나고,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리기 때문에 힘이 없는 것일 뿐, 어른이 되기만 하면 이전에는 갖지 못한 힘들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간단한 수식의 문제들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 모든 문제와 상황들에 변수들이 무수히 많았고, 나는 그 변수들 앞에서 화가 났고, 예전의 상황들과 문제들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그것이 가져다주는 분노에 파르르 떨어야 했다. 




나는 늘 제비뽑기에는 소질이 없었다. 어떤 뜻하지 않은 행운이 내게 떨어진 적도 없다.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 간절히 바라던 행운까지도. 학교 수업 중에 발표순서를 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을 때도 제발 1번만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사람들 모두 간절히 빌었는데, 내가 1번을 뽑고야 말았을 때 난 정말 재수가 지지리도 없구나 생각했었다. 아들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아들이 월반을 할 때 그 해에 들어온 아이들이 너무 많다며 제비뽑기를 해서 아이들을 추려야겠다고 원장이 말했을 때도 나의 이 재수없음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야 말았다. 그 중에 단 두 세명만이 떨어지는 것이었는데 나는 쫄딱 떨어지는 제비를 뽑고야 말았으니. 그 외에도 제비뽑기를 해서 내게 좋은 결과가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의 이 운과는 지지리도 멀어보이는 제비뽑기 실력을 보면서, 어쩌면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도 제비뽑기를 해서 자기가 태어날 집이 정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때도 나는 나의 지지리 재수없음을 발휘하여 아무도 뽑고 싶지 않았던 제비를 뽑아 지금의 부모 밑에, 그런 가정에 태어나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하고. 


운이 좋은 사람들은 늘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운이라는 것도 경험해본 사람에게,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기라도 한 것마냥.




어떤 고운 여성이 있다. 사실, 이 여성은 내가 요즘 부러워하는 여성 중 한 명이다. 내가 아는 여성 중 가장 고운 여성일 것이다. 그녀의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씨에 그 앞에만 서면 무장해제되어 나 역시 가장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버리니, 그녀가 가진 그 능력 하나가 정말 아름다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이 마치 깨끗한 물속이 훤히 보이듯 보여, 그녀에겐 적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는 듯 보였다.


어느 날 그녀가 뽑고 싶지 않은 제비를 뽑았다며 그래서 맡고 싶지 않았던 자리를 맡았다고 울상이었다. 그녀에겐 그것이 운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지만, 내겐 어떤 위로의 하나가 되어주었다. 그래, 제비뽑기는 그냥 제비뽑기일 뿐이었어. 내가 특별히 재수없는 인간이라 그런 불운이 닥쳤던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행운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야. 어떤 티 하나도 없을 것만 같았던 그녀에게도 가끔 재수없이 뽑고싶지 않았던 제비를 뽑고야마는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그건 그냥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일 뿐인 거였어.


가끔, 나와 상관없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나의 발목을 잡거나, 나에게 상처를 가져다주거나, 나를 못난 사람처럼 여기게 만들 때 다른 이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없기에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같은 느낌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고는 그저 하나의 사건을 넘어 내 인생 전체가 마치 그러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 고아도 너무 고운 그녀도 뽑고 싶지 않았던 제비를 뽑았어. 그리고 나도 뽑고 싶지 않았던 제비를 뽑았어.

어쩌면 내가 가졌던 가난은 내가 뽑았던 제비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뽑고 싶지 않았던 제비 하나쯤 아마 있을 거야. 


우리는 각자 다른 제비들을 뽑았을 뿐. 누군가에게는 외모가, 누군가에는 돈이, 또 누군가에게는 공부가... 각자 다른 내용의 제비였을 뿐. 


그 제비 하나가 우리 인생을 좌우할 만큼 우리 인생은 그리 작지 않음을...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인생에도, 아무리 티 하나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뽑고 싶지 않았던 제비 하나쯤은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아주 조금은 자란 어른이 되어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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