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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Aug 23. 2017

울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줘

감정의 면역력을 높여나가길... 

가끔 사람들은 아주 큰 상처 앞에서 목놓아 엉엉 울어야 할 것 같은데 예상 외로 대범할 때가 있고, 아주 가벼이 지나쳐버리고 잊어버릴 만한 상처에 뜻도 없이 울게 될 때가 있어.


어쩌면 우리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큰 시련에 대해서는 늘 대비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무방비의 상태에 있을 때 닥치는 시련에 대해서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생각해 봤어. 상처라는 것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그것을 대비하고 있었느냐 하지 못했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감정의 크기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뼈가 부러지는 아픔보다 이상하게 칼에 살짝 베인 손끝의 상처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걸 보면 어쪄면 우리의 감정에도 작은 상처에 더 예민한 말초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가끔 작은 아픔을 더 위로받고 싶은 건가봐. 작다고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버리곤 하니까.



어쩌면 작은 것은 작은 것이 아닐지도 몰라.

아니, 나에겐 작은 상처가 아닌데 상대편에서 작은 상처로 정의내리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

위로가 필요한 똑같은 상처일 뿐인데, 그래서 위로받고 싶은 것일 뿐인데 상대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더 서러움이 밀려들기도 하고 말이야.


삶의 면역력이 떨어질 때가 있어.

그것은 감정의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리지.

그럴 때 겪게 되는 아픔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 누군가 꼭 옆에서 안아주어야만 해.

어쩌면 상처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핑계삼아 울고 싶었던 울음을 쏟아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면서 우는 방법을 잊어버리곤 해.

아픈데도 울지 않고 참는 너를 보면서 가끔은 네가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도 된단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울음을 참는 것을 배우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어.

그것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무감각해지면서 나를 위로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어.


어떠한 작은 상처라도 결코 작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울지 않는 것이 어른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웃음에서도 자유로워야하는 것처럼 울음에도 늘 자유롭기를 바란단다.

작은 상처에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그 옛날처럼 말이야.


감정의 면역력을 높이려면 우리는 그 감정을 직면해야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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