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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Aug 27. 2018

당신의 열등감은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요?

안녕, 낯선 내 마음

유전자 깊숙이 내재된 것처럼 나의 열등감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 이미 나와 함께 태어난 것만 같다.

도대체 열등감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역사의 뿌리가 깊으니. 그렇다면 내가 잠들 때 그 열등감 역시 잠들게 되는 것이리라.


한 가지 분명한 건 내 모든 우울의 근원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를 몰랐던 순간에도, 나를 모르는 척 했던 순간에도 그 만큼 분명하고 선명한 것은 없을 정도였다.


또 때로는 지나치게 높은 자의식으로 인하여 나의 잘못도 모두 인지하고 있을 때, 그냥 막무가내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하기만 할 수 없을 때, 나도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고 있을 때, 상대가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고 있을 때 역시나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인지한다는 것은 우울을 자초할 충분한 조건일런지도 모른다.


열등감이 우울함을 초래한다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심한 열등감으로 인해 자기애가 지나친 나르시시스트를 본 적이 있다.

열등감의 얼굴은 우울과 함께 나르시시즘이라는 또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어쩌면 여기에서는 뭔가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애는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자기애가 극에 달한 것이 나르시시즘이고 열등감과 나르시시즘은 극단에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이처럼 맞아떨어질 때가 없다.


자기애도 적당해야 건강한 것이다. 그것이 지나쳐 자기를 탐닉하거나, 자기에게 반대되는 어떤 의견에도 발끈한다거나, 변태적인 성욕을 가졌다는 것은 결코 건강한 자기애는 아닐 것이다. 열등감은 자기애를 이렇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의 모습이다.



한 남성이 있다. 자신의 남성성을 지나치게 과시하며 마초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없이 자란 남성이 지나치게 마초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그런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성적 우월감을 늘 드러내며, 힘과 지위를 과시하곤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조건들을 갖고 있었다. 그의 열등감은 우울 대신 나르시시즘의 가면을 택했다. 아무에게도 쉽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자기방어 본능이 비뚤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뭔가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에서도 상당히 민감하고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아 나를 가르치느냐고 따져 묻기도 한다. 어떤 여성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척 하면서 자신이 배신당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은 여자들에게 상처주고 있었고 먼저 배신하는 쪽은 자기 자신이었으면서도 투사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만을 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없는 지난날의 영광만을 이야기하느라 상대의 시간까지 허비한다.      


누가 봐도 제 나이로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열 살은 어려보인다고 스스로 착각하기도 한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처럼 자신을 꾸미면서 SNS에 실존하지 않는 그녀에게 글을 쓰기도 한다.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의 행동을 봤을 땐 누가 옆에 있든 말든 서슴지 않고 뭐라고 하는 건 기본이고, 끼어 든 차의 운전자를 다짜고짜 주먹으로 때리며 힘을 과시한다. 자신의 앞을 감히 가로막았으니 그건 응당의 대가라고 여기면서. 그리고 항상 성적인 집착이나 변태적인 성욕을 스스럼없이 내비친다. 말과 행동이 과장되고, 자신이 쓴 글에 스스로 심취한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글 한 줄을 써놓고도 글이 너무 좋다며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자아도취가 빈번하다. 그러면서 상대도 당연히 심취할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며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식을 뽐낸다. 피아노 연주를 본 후 그 피아노의 종류는 무엇이고, 그 피아노 마지막 곡은 무엇이었는지 누가 묻지 않아도 자신이 얼마만큼의 지식과 조예를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표현해야만 한다. 그것이 얼마나 매력 없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지도 모른 채.


그의 주위에는 그를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예의있게 행동하지만, 그것이 그를 마음 깊이 좋아하거나 존경해서 나오는 예의가 아니라 부딪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였다. 그에게 무안당하는 누군가를 보면서 그 사람이 무안할까봐 하는 이야기와 상황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믿고는 했다.  스스로 자신이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고 높은 위치에 있어서 사람들이 감히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의 차가운 태도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차가움은 감추기 힘들다. 아무도 사람이 뿜어내는 차가운 입김을 호호 손을 불면서까지 감내하고 있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원해서 그들의 모임에 오기를 청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의 방문과 참여를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만 모를 뿐, 사람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나의 열등감을 직면하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용기가 없어 차마 그것을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 한다면 그는 오히려 화를 낼지도 모른다. 자신이 애써 감춰왔거나 모른 척 했거나, 아예 그 본질을 알지도 못한 것을 누군가 들추어냈을 때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을 허럭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 환상에 빠져 어느 여인을 좋아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 여인은 전혀 그럴 마음이 아니었고, 그 상황이 몹시도 불쾌했지만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못 한 채, 여전히 혼자서 소설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 여인이 자신을 몹시도 사랑했지만, 자신에게 실망해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상황을 미화시키면서.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어떤 육체적인 사랑을 원하면 상대도 당연히 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나이는 생각하지 않고, 한참 어린 여성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말이다.


여성들은 보통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를 이성으로 보는 일이 드물다. 여성은 상대가 나를 전혀 여자로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편해서 까불고 명랑해지는 행동을 남자는 이성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상대를 여자로 본다. 그 여자 입장에선 자신을 여자로 보는 그 남자가 끔직한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 한다.


가끔은, SNS에 실존하지 않은 대상을 향한 글을 쓰기도 한다. 마치 자기 주변에 자기를 사랑해주는 여인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기를 꾸미기도 한다. 아무런 능력이 없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지난 날의 영광만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두 가지 얼굴, 우울감과 나르시시즘. 둘 중 그래도 우울은 나만 힘든 것이지만, 나르시시즘은 상대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우울한 손가락의 방향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만, 나르시시즘의 그것은 상대를 향해 있기 때문에,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슈퍼맨은 날 수 있어야 슈퍼맨이지 날 수 없으면서 그렇다고 믿는 것은 정신질환이나 성격장애의 시작이다.


그것이 나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믿겠지만, 결국 혼자서 겨울을 걷게 된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니, 나라도 나를 지독하게 사랑해줘야 한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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