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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Sep 04. 2018

주는 것 없이 싫은 건 없어

안녕, 낯선 내 마음

어떤 이들은 솔직하다 못 해 지나치게 자신의 말을 무기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런 말을 해야겠다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주는 거 없이 싫은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이러한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딱딱할까를 생각해 본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얼굴 색 하나 변함없이, 목소리의 톤도 전혀 떨리거나 흔들림이 없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보였다.


그렇게 말 하는 사람들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을 옆에서 들은 적도 있고, 얼마 전에 딱 한 번 이런 이야기를 실제로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듣고 있을 때는 그 상황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상처를 많이 입었겠다, 옆에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내가 막상 이 말을 듣고나니, 상대가 불쌍해 보였다. 나는 사실 그 사람의 이름도 알지 못 했고, 그 사람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니 그런가보다 무덤덤하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이 말을 듣고선 엄청난 상처를 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처받지 않은 나를 보며 그녀는 무안해 보였다.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전혀 상처될 일도 아니지만,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상대에게 나라는 사람이 썩 신경쓰이는 존재인 것을 느끼면서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 하는 건 오히려 그녀이기까지 했으니.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을 나에게 전가시켜 둘 모두의 문제로 만들고 싶었지만, 나는 사실 다른 사람의 감정이 쉽게 물드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의 화나, 감정은 상대의 것이고 상대의 문제인데 내가 상대의 문제를 대신 짊어져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화를 내면 화를 내는 그 자체에 같이 화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살면서 그렇게 상대의 분노에 전염돼 본 적도 별로 없다. 그건 너무 내 감정을 낭비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느끼거나, 그런 생각이 들 때, 너는 원래 존재 자체가 싫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주는 것도 없는데 싫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싫어하는 이유에 이미 자신만의 정당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기조차도 입밖으로 꺼내기가 힘들 때가 더 많다. 싫은 이유가 분명하면서 합리적이라면 싫은 이유를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어느 것도 자극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나 태도가 싫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특별한 이유도 없다.  


어느 날, 어떤 여성을 보며 나 역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외모적인 열등감을 많이 느껴본 적이 없다. 나의 외모가 뛰어나서가리기 보다 열등감까지 느낄 만큼 예쁜 사람을 텔레비전 밖에서, 그것도 내 반경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길 거리에 지나가는 엄청난 미인을 보며 너우 예뻐서 놀라기는 해도, 열등감이 발동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누가 봐도 예뻤다.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한참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져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후에 나는 그녀가 웃는 모습도 싫었다. 그녀가 웃는 모습이 과해 보였고, 철이 없어 보였다. 얼굴은 예쁜데 몸매는 그래도 별로라는 자기 위안의 생각도 했다.


'다리통이 생각보다 엄청 굵네.'


나의 초라한 마음을 어떻게 해서라도 희석시키기 위해 그녀의 단점들을 그녀의 웃는 얼굴과 몸매에서 찾고 있었다. 나도 순간 아무 이유없이 그녀가 싫다는 생각을 할 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나를 속이기에는 내 마음을 너무나도 정확하고 투명하게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내 마음의 기저에 있는 본질들이 내 눈과 뇌에까지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왜 모든 감정의 근원들이 읽혀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만 눈을 딱 감고 싶을 때조차.


상대의 모습이 나를 자극할 때 그것은 우리의 열등감을 건들기 때문일 때가 많다.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우월감에 집중하며 그것을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한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열등감이 그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자신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나타나거나, 자신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나를 지탱해주는 우월감 속에 감춰진 열등감이 화라는 감정을 동반하면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어떤 이들은 내가 예전에 싫어했던 누군가와 닮은 사람이 나타나거나, 내가 미워했던 부모와 닮은 사람이 나타나면 주는 것 하나없이 상대가 싫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과 닮은 누군가를 보면서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이렇듯 우리 마음 속 열등감이나 불편한 마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투사라고 한다. 심지어 불쌍한 나의 모습을 닮은 자식을 보며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역시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는 커녕 싫어지는 이유가 이러한 투사의 방어기제 때문인 것이다. 내가 잠시 질투의 감정을 느꼈던 그녀의 웃는 모습이 왜 그토록 싫었던지 투사의 방어기제를 떠올리며 알게 되기도 했다. 그녀는 털털하게 보이기 위해 과하게 웃곤 했는데, 그 모습에는 내 모습도 들어 있었다. 지나치게 차갑게 보이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털털하게 보이고자 애썼던 시절의 내가 나는 정말 싫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과 비슷한 그녀의 모습 역시도 쳐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아무 이유없이 싫은 사람은 없다. 이유가 있지만 말하기 부끄럽거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무의식에 지배를 당해 이런 감정들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의 태도나 행동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느낄 때조차도 그것은 사실 나의 감정이고 나의 문제다. 내가 싫다고 상대의 얼굴을 못 나게 할 수도, 상대의 능력을 떨어뜨릴 수도 없는 것처럼 상대의 행동이나 태도 역시 내가 고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나의 마음상태를 고칠 수도 없고 그럴 노력조차 하기 싫은 채, 여전히 그 사람이 싫다면 그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일 정도로 그는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내가 싫은 사람의 특성을 보면서 누구나 똑같은 반응이나 마음을 갖지 않는 것만 봐도 그것이 얼마나 나만의 문제인지 알 수 있고, 실은 상대가 아니라 내 감정이 나를 자극하고 있는지가 명백해진다.



누군가를 싫다고 느끼는 순간,
당신의 열등감과 지난 시절의 당신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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