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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Aug 25. 2018

자존감이 아니라 무기력입니다

안녕, 낯선 내 마음

20세기에는 잘 들어보지 못 했던 자존감이라는 단어.

21세기가 된 지금 온 나라에 전염병처럼 퍼진 말이 되었다. 가끔 가다 어떤 일에든 자존감을 찾는 사람들을 볼 때면 자존감이 하나의 핑계 내지는 원인 불명인 병에 당연히 내려지는 병명같은 느낌이 든다. 무언가에라도 책임을 돌리고 원인을 알아내야 불안감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행동과 마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근원에 대한 대책 정도는 아닐까.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넘쳐나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자존감 이야기를 한다.

사실, 그러한 책들을 써낸 작가들조차 진짜 자존감이 뭔지도 모른 채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 안에서의 자존감을 쓸 뿐이다. 그들 중 심리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많지 않았고, 대책도 없이, 정확한 지식도 없이 사람들의 관심에 맞추어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느낌마저 든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해야 하니까 말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존감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나를 높이는 마음' 한자 그대로의 뜻도 아니다. 자존감은 '내가 나에 대해 내리는 전반적인 평가'의 의미로 '자기효능감'과 나를 둘러싼 '중요 타자들과의 관계'를 합친 개념이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자기효능감)은 높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다면 자존감이 전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존중감 = 자기효능감(자신감) + 중요 타자와의 관계


육아로 고생하는 엄마들, 취업이 잘 안 되어 실망감을 안게 된 청춘들,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겪어서 힘든 마음을 끌어안게 된 사람들 등등. 어떤 소용돌이 가운데 있다가 거기로부터 막 빠져나왔을 때 자신의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표현하는데 실은 자존감이 문제가 아니라 무기력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무기력감을 느낄 때 마치 자신의 자존감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고 자기 존재가 하찮게 느껴지곤 한다.


기력이라는 것은 내가 올렸다 내렸다 할 수도 있고, 날씨에도 쉬이 영향을 받는 것이지만, 자존감이라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정해지는 것으로 본다. 심리학에서는 아주 일찌감치, 다섯 살 정도에 개인의 자존감이 결정된다고 본다. 중요 타자, 즉 부모님의 양육방식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로 말이다.


가끔 아주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여성이 자존감이 낮은 경우를 본다. 무엇 하나 빠지는게 없는 것 같은데도 자존감이 낮다. 그에 반해, 별로 가진 게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자존감이 높은 경우도 많다. 모든 걸 다 갖춘 것 같은 탑스타가 어느 사건 하나로 목숨을 끊는 경우와 진짜 자살하는 것이 마땅해 보이는 일을 겪은 어느 연예인이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는 경우를 봐도 둘 사이에는 어렸을 때부 자존감을 건강하게 유지해줄 부모가 있었느냐, 그렇지 못 했느냐의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즉, 심리학에서 자존감은 어떤 개개의 사건이 모여서 형성되는 귀납적인 것이 아니라 연역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건 하나하나가 그 사람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정해지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존감이 건강하게 형성되지 못 한 사람은 인생이 평탄하게 흘러갈 때는 괜찮다가, 좋지 않은 상황을 겪었을 때 그것이 극단적인 상황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 나의 자존감이 건강하지 못하게 형성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자존감이 끝장난 것은 아니다. 작은 도전을 통해 작은 성취의 경험들을 자꾸 하면서 자기효능감을 높인다면 전반적인 자존감을 끌어당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실망스러운 일을 겪고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진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는 것처럼. 그래도 다행인 건, 무기력이라는 건 다시 상황이 좋아지면 없앨 수 있으니 자존감이 낮은 것보다는 오히려 해결이 빠르다는 것. 자존감은 항상성을 유지하더라도 무기력은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것.


그러니, 우리는 오늘 그냥 무기력한 것일 뿐입니다.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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