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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Oct 18. 2018

내가 진짜 화가 나는 이유

안녕, 낯선 내 마음

"여자는 화내고 싶은 '것'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내고 싶을 '때'에 화를 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이처럼 놀라운 비밀을 마침내 알아내고야 말았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버렸을테니 더 이상 비밀로 지켜낼 수도 없게 됐다. 그런데 이 말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말은 아닌 듯하다.  평소에 그냥 웃어넘기던 농담도 화내고 싶을 때에 잘못 걸리면 분노의 표적으로 삼아버리는 사람들은 비일비재하고 뉴스에서 야구방망이까지 들고나오는 분노한 남성 운전자들을 수시로 목격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


똑같은 농담을 친구들 모두가 한자리에서 똑같이 했는데도 유독 어떤 한 아이에게만 화를 내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했던 말의 내용, 농담의 내용같은 건 처음부터 그 친구의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들에겐 허용하던 농담을 너에게만큼은 허용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너와 나의 거리는 이만큼이나 멀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버렸다. 모든 친구에게 화를 낼 수 없어서 가장 싫고, 가장 만만했던 한 친구에게 모든 화를 몰아몰아 집어던졌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상처를 받든 말든 그런 것에 대한 배려는 애초에 어디에도 없었다. '너 따위'에 해당하는 대상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가끔씩 정당하지 못한 화풀이를 참고 있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난 적이 있다. 부부싸움을 하고 온 다음 날의 아침처럼 교실문을 들어설 때부터 인상을 구기고 들어온 선생님으로부터 때아닌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누구 하나 걸려봐라'가 그녀가 놓은 덫이었는데 거기에 금세 걸려들고야 말았다. 그래, 그때는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을 뿐이니까 대항할 힘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도 이런 일은 수시로 있었다. 다른 데서 뺨 맞고 한강에다 화풀이하는 사람처럼 10분 지각한 나를 쥐잡듯이 잡아댄 상사의 화를 참고 있어야 할 때도 있었고, 나의 비밀을 온갖 곳에 모두 폭로해버린 친구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모른 척 할 때도 있었다. 직장에서 나보다 한참 어린데도 예의없이 행동하며 말하던 동료들의 폭력에도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하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참을성이 깊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용기가 없었던 거였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보기보다 착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였다. 비겁했고 또 무지했다. 자연의 어떤 이치로 비가 오고 때로는 장마가 퍼붓는 것처럼 그들의 화를 그냥 자연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였다. 국지성 호우가 느닷없이 불어닥치는 것을 대비해 그것을 막아줄 우산은 미리 챙겨둬야 한다. 지금은 화가 났으니 그 화를 실컷 내게 풀라는 암묵의 허락 따위는 하지 않았어야 한다. 남의 화가 풀리든 말든 그것을 신경쓸게 아니라, 그 화로 위축되고 상처받고 있는 나를 더 들여봤어야 했고, 스스로 우산을 펼쳐들었어야 했다. 나 대신 그것을 막아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기에.


어떤 배우를 볼 때마다 화가 난 적이 있다. 나쁜 역할을 많이 맡았고, 그가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이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몸서리칠 정도로 싫은 누군가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닮은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배우를 봐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고, 개성있는 배우일 뿐이었다. 이제는 텔레비전에 나오기만 해도 채널을 틀어버릴 정도가 됐다. 싫어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보면서 화가 나는 이유에 우리는 어떤 정당한 근거와 이유를 댈 수 있을까. 그런 적이 있기는 있는 걸까. 나를 미워하니까 당연히 나도 함께 미워한다. 그 사람만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같이 빨려들어가 네가 눈을 흘기는 것만큼의 딱 두 배 정도의 눈을 흘겨준다. 감히 나를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너도 미움받아야 하는 당연한 이유인 것이니, 너만 나를 미워할 수 있다는 착각을 철저히 부셔버려야 하니까. 어떤 누군가를 떠올리는 그 면상 자체도 내게서 멀리 떨어뜨려야 한다. 전혀 다른 사람이고,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인데도 얼굴이 닮았으니까 성격까지 닮았을 거라고 지레 피해버린다. 안그래도 하루종일 되는 일도 없는데, 했던 말 또 하게 하는 너에게 있는 힘껏 화를 내기도 한다. 평소에는 잘 받아주던 그 말에도 '지금'이라는 때에 잘못 걸려들었기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내가 싫어하는 부모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자녀를 볼 때마저도 화가 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쥐어잡을 때도 있다.


이 모든 까닭모를 분노와 그 표출이 우리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주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분풀이를 위한 화를 내고 있었던가. 구겨진 감정을 펴기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을 더 구겨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선 '나한테 잘 못 걸렸다가는 가만 두지 않겠다'는 무언을 미간에 가득 새긴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나의 감정인데도 그 탓을 상대에게 돌려버릴 때도 많다.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센 척을 하기 위해서 온갖 인상을 쓰고 다니다가 결국 보톡스의 힘을 빌려서야 겨우 지울 수 있는 주름만 미간에 가득 새긴 사람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방어막을 치면서 지금껏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미간에 주름이 많이 진 사람 곁에는 애써 가지 않는다. 화를 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미간에는 그 화의 흔적들이 깊게 남아 있곤 했다. 그들은 늘 화의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았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화풀이를 하곤 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언을 행사하기도 했다.


남을 구겨버린다고 생각할 때조차 실은 내가 구겨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때도 됐다. 삐져나와 보푸라기를 일으키는 삶을 주체하지 못할 때 우리는 때때로 울기도 하는 것처럼, 때때로 화를 내기도 한다. 지극히 당연한 감정과 표현들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은 우리를 그리고 인생을 밀고 나가는 동력을 지나치게 한 가지의 감정에만 부과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내가 피해자'라는 느낌과 생각에 너무 갇혀있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가끔 터져나오는 분노를 스스로 추스르지 못 하고 정리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너의 공통의 문제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곤 한다. 화를 낸다는 것은 나의 문제를 너의 문제로 전염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다. 상대의 반응을 가장 즉각적으로 이끌어내는 감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분노는 싸우거나 도망치는 등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고 누군가 나를 할퀴는 것에까지 참는 것은 내가 나를 보호하지 못 하는 가장 바보같은 짓이다. 가당치 않는 이유로 나에게 화를 내도 된다는 허락과도 같다. 그런 허락은 나를 때려도 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과 마음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 중 어떤 것이 덜 가볍고, 더 무거운지를 쉽사리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화는 나를 지키고, 내 자신에게도 정당하고 떳떳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화가 난 나를 위로할 수 있다. 근거없는 화는 남의 공감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온갖 것을 분노에 다 써버리는 고갈상태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 이후에 어쩜 우리는 많은 것들과 헤어질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화가 난 건가요,
화를 내고 싶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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